로마서

180114 “로마서(21) 은혜로 살자 (롬 8:12-17)”

[설교요약]로마서는 우리의 구원을 여러 가지 그림언어로 서술한다. 우리는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속량, 즉 해방되었다(3:24). 우리는 죄의 족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종, 의의 종, 순종의 종이 되었다(6장).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다(8:15).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공동 상속자이며(8:17),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다(5:17). 이러한 그림언어들 가운데 8장이 부모-자녀 관계를 부각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은혜의 효과성을 설명하기에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과정에서도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나 은혜의 효과성은 인간의 책임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죄의 지배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음을 환기시키며(6장),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라 경고한다(8:11)

180107 “로마서(20) 은혜를 알자” (롬 8:12-17)

[설교요약]바클레이(John M.G. Barclay)의 는 은혜에 대한 연구서이다. 그는 바울 당시 유대교 각 분파들과 그 후 2천년 바울 해석사를 연구하여, ‘은혜’라는 말이 6가지 서로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보다 비상응성(incongruity)으로 대변되며, 그와 함께 우선성(priority)과 풍성성(superabundance) 그리고 제한적이나마 효과성(efficacy)으로 특징지어진다. 반면에 단일성(singularity)은 바울에게서 나타나지 않으며, 비순환성(non-circularity)은 근대에 새로 나타난 개념으로서, 바울뿐 아니라 그 당시 어느 문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클레이의 논지이다. 말하자면, 은혜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2-17에 의하면, 은혜는 빚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녀가 부모에게 진 것과 같은 사랑의 빚이다.

171231 로마서(19) 성령의 내주하심 (롬 8:5-11)

[설교요약]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어 죄를 심판하시고 우리를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하심으로써, 율법이 해야 했으나 하지 못한 일을 친히 이루셨다. 이것이 구원 사건이다. 이 구원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이루어진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가능한 이유는 그 사람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가 더욱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으로 성숙해 가기 위해서는 비움과 채움의 영성훈련이 필요하다. 비워야 할 것들은 용서하지 못함으로 인한 분노와 원망, 용서받지 못함으로 인한 죄책감, 그리고 하나님의 주 되심에 내어드리지 않은 우상들이다. 비워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공간을 그것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비움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 공간을 채우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도록 내어드림의 훈련을 계속하자.

171224 로마서(18) 생명의 성령의 법 (롬 8:1-4)

[설교요약]인간의 비극의 핵심은 죽음이다. 율법에게 기대된 것은 죽음의 지배 가운데 있는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율법은 오히려 죄의 지배에 악용되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 예수는 죄의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를 포위하고 육신 안에서 활동하는 죄를 심판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죄와 사망의 법’이 죄의 지배에 사용되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끈 율법의 한계를 보여준다면, ‘생명의 성령의 법’은 죄의 지배를 폭로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한 율법의 기여를 대변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으므로 심판을 받지 않는다.

171217 로마서(17) 율법을 통한 죄의 지배 (롬 7:7-25)

[설교요약]율법이 오기 전에도 죄가 지배하고 있었다. 단지 죄가 죄로서 인지되지 않았을 뿐이다. 율법은 우리의 개별적인 범죄 행위를 인지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지배하는 죄의 세력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러나 율법은 이처럼 죄를 드러내 주면서도, 정작 그 죄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 드러난 죄가 오히려 율법을 이용하여 우리를 속이고 우리를 지배한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죄는 율법을 통해 오히려 지배를 강화한다. 그러한 죄의 기만에 넘어가지 말자. 율법은 죄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죄의 암덩이를 녹인다. 은혜를 붙들자.

171210 로마서(16) 은혜의 통치

[설교요약]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6:14). 이것을 방종의 근거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은혜 아래 있음이 무엇을 뜻하는지(6:15-23) 그리고 율법 아래 있지 않음을 무엇을 뜻하는지(7:1-6) 차례차례 설명해 나간다.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구원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은혜의 통치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5:21).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지 말고, 순종의 종(17), 의의 종(18-19), 하나님의 종이 되라(22). 그것은 국적을 바꾸는 것과 같다. 우리의 죄의 지배, 즉 사탄의 나라로부터 하나님 나라로 국적을 바꾸었기 때문에, 죄의 지배의 매개가 되던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7:1-6). 하나님의 주 되심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규범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171203 로마서(15) 생명의 시대 (롬 6:1-11)

[설교요약]우리의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사람으로 예수와 함께 시작된 생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비록 하나님 나라와 파라오의 질서가 공존하므로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과도기를 살아가지만, 그 죄의 지배는 이미 독침을 제거당하고 파멸의 내리막을 치닫고 있다. 그러므로 죄의 노예 상태로 돌아가려 하지 말고 새 시대의 시민답게 살자. 죄의 아바타에 불과하던 왜곡된 자아를 벗어버리고, 참 자아를 회복하여, 주님 안에 있는 참 자유를 누리자.

171126 로마서(14) 죄의 지배로부터의 자유 (롬 5:12-21)

[설교요약]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는 관건은 죄의 지배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주제를 다루는 로마서 5-7장 가운데 첫 단락인 5:12-21은 죄의 지배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또 어떻게 끝나는지를 미리 보여준다. 인간의 죄란 단순히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 되심을 거부하고 죄의 지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지배)는 율법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다. 아담이 이 세상에 죄(의 지배)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 죽음이 들어왔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죄(의 지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순종, 즉 신실함을 통해 끝난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된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그 자유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교회는 자유의 훈련장이다.

171119 로마서(13) 구원을 이루어 감 (롬 5:1-2, 9-10, 19)

[설교요약]믿음과 구원은 과정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 되심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구원받았으나 아직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는 못한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 살아간다. 로마서는 구원을 칭의, 성화, 영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서술한다. 칭의, 성화, 영화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동일한 구원 사건의 여러 측면이다. 구원이란 죽은 후에 타는 천국 행 열차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계속되는 경주이다. 그럼 우리는 이 경주를 무사히 마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성경은 그것을 기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확실성은 오직 하나님께 있을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를 의롭게 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다.

주일 예배 안내

2024년 3월 31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누가복음 24:1 – 12

제목:   누가복음(39) 부활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