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20109 요한복음(28) 때를 이루어감 (요7)

[설교요약]“예수의 때”란 예수께서 붙잡히심으로 시작되어 수난, 죽음, 부활, 승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날 때를 가리킨다. 예수는 공생애 시작 전부터 이미 그 때를 내다보시고 준비해 가신다.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요한을 예의주시하던 유대인들의 눈이 예수에게로 옮겨가고 그를 향한 적대감이 증폭되어 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예수의 때가 무르익어간다. 이 때는 곧 예수께서 영광 받으실 때이다. 요한복음은 예수 생애의 두 순간에 영광이 결정적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성육신이고(1:14) 다른 하나는 십자가이다. 그 지점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만나 하나를 이룬다.

211219 요한복음(26) 예수의 때 (요7:1-13)

[설교요약]시간과 관련된 요한복음의 주제 가운데 하나가 “예수의 때”이다. 한동안 예수는 자신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2:4; 7:6, 8, 30; 8:20). 그의 때는 그가 붙잡히심으로 시작하여(7:30; 8:20),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12:24) 그리고 승천으로 이어진다(13:1). 요한복음을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예수께서 영광받으실 때라고 말한다(12:23). 이것을 공간적으로 보면 예수의 들리심이다(3:14; 8:28; 12:32-34). 십자가 후에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영광의 시작이다. 예수의 생애는 내려감의 연속이었다. 들어올리심은 하나님의 일이었다. 우리도 내려가는 길에 있을 때 예수처럼 사명에 충실하자. 그리고 다가오는 성탄절 가장 낮은 곳에서 그분을 만나자.

211205 요한복음(24) 예수를 오해한 사람들 (요 6:60-7:9)

[설교요약] 요한복음 6-7장에서는 오병이어 기적과 예수의 말씀에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다섯 그룹의 사람들이 대조되어 나온다. 그 중 열두 제자를 제외한 네 그룹은 모두 예수를 잘못 알았고 그래서 온전히 믿지 못했다. 첫 그룹은 기적을 보았을 뿐 표징을 보지 못했다. 둘째 그룹은 기적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셋째 그룹은 예수를 떠난 제자들이고, 넷째 그룹은 예수의 형제들이다. 몇 제자들이 왜 예수를 떠났을까? 첫째, 자신들의 기대를 위해 예수를 수단화하고자 했을 수 있다. 둘째, 예수를 위대한 스승으로만 보고 그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심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 있다. 셋째, 예수를 상식의 한계 내에 가두고자 했을 수 있다. 오늘 우리의 성찰을 위한 반면모델로 삼자.

211128 요한복음(23) 생명의 빵 (요 6:22-59)

[설교요약]오병이어 기적에 이어지는 설교에서 예수님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양식 곧 생명의 빵은 예수님이시다. 그 빵은 어떻게 먹을까? 예수께로 가는 것, 예수를 믿는 것이 생명의 빵을 먹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의 살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신다. 왜 이런 비유를 사용하셨을까? 첫째, 빵은 생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예수는 생명의 빵으로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둘째, 음식은 우리 속에 들어가 우리의 존재가 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먹어 예수가 우리의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

211121 요한복음(22) 나다 (요 6:1-27)

[설교요약]예수님은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심으로 여기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셨다. 그리고 잠깐의 만족을 넘어 미래에 다가오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눈을 들게 하셨다. 기적만 보고 표징은 보지 못한 무리는 예수를 왕으로 만들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예수께서 우리 주님으로 오실 때 그를 맞아들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호렙산의 “에고 에이미”를 재현하심으로 그것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다. 하나님을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가두려 하지 말고,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주님의 일하심을 보자.

211114 요한복음(21) 예수의 증인들 (요 5:31-47)

[설교요약]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했다는 죄목을 예수를 법정에 세웠다. 예수님은 먼저 자신은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냄 받으신 분임을 분명히 하며 그 사실을 입증한 네 증인을 세우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시는 일들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도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알고 있었다(2:23; 3:2). 네 증인의 실제 역할은 예수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 법정의 피고는 예수가 아니라 “유대인들”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무지로 인해 남을 정죄하는 입장에 설 때가 있지 않은가? 그들의 실수로부터 배우자.

211107 요한복음(20)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요 5:17-30)

[설교요약]예수께서 안식일에 38년 병자를 치유하신 일을 “유대인들”이 문제삼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고 대답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안식일에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계속하신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했다고 분개하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만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예수님은 그분의 뜻을 따라 창조의 생명을 보전하며, 생명을 교란하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에는 심판이 더해진다.

주일 예배 안내

2024년 4월 28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골로새서 1:15-20

제목:   거룩한 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