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교회

150712 세상: 분별과 대화

[고린도전서 8:1-3] 하나님의 피조세계로서의 이 세상은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그 배후에 또는 심층에 있는 영적인 실체들이다. 이 세상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분별과 대화이다. 분별이 필요한 이유는 파라오의 질서가 이 세상에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선하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싸움이 아니라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이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주 되심의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이 세상에 적용할 수 있는 가치들로 번역해 내야 한다. 대화를 위해서는 이분법적 사고, 즉 흑백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이분법은 대화가 아니라 전쟁의 논리이다. 그리고 정치와 언론이 부추기는 왜곡된 이분법은 신앙에도 유해하다. 싸움의 대상과 대화의 대상을 혼동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지식의 출처가 되는 언론을 검증하고, 우리의 지식의 상대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를 통해 비로소 일상의 복음화가 진전되어 갈 것이다.

150705 세상을 바로 이해하기

[요한복음 3:16-17] 신약성경에서 ‘세상’이라는 말은 때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중립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부정적 의미의 세상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력, 즉 파라오의 질서로서의 세상이며, 성경이 말하는 ‘이 세대’이다. 중립적 의미의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하셨던 그 세상, 즉 하나님의 피조세계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세상의 두 가지 의미를 혼동해 온 배경에는 (1)교회와 세상의 이분법과 (2)요한계시록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 있다. 부정적 의미의 세상이란 교회 밖의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이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세상은 하나님을 안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못 믿는 사람들이다.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종말의 구원은 피조세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세계를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셨던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150201 지식과 사랑

[고린도전서 8:1-3]

1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방식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주십니다.

140608 세상의 소통을 촉진하는 교회

[사도행전 2:5-13] 기독교는 소통의 종교이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셨고, 성령이 임하실 때 소통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교회 밖의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그 뿐 아니라, 세속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원활한 소통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편가르기로 전락하기 일쑤이고, 교회는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다. 이를 극복하고 세상의 소통을 촉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복음이 사회적 가치로 창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복음이 재발견되어야 한다. 복음은 교리가 아니라 삶이다.

주일예배 안내

8월 16일 오전 11시(온라인여름수양회)

설교자: 민경진 목사 (부산장신대학교 교수)

본문:   전도서 9장 9절

제목: “코헬렛, 행복으로의 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