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200503 산상수훈(25) 복되다(마 5:3-12)

[설교요약] 시에는 생략의 미학이 담겨 있다. 열 마디로 할 것을 두 세 마디로 함축해 내는 것이 시이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는 생략된 정보를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 그 정보들은 올바른 맥락에 놓일 때 가장 적절히 채워질 수 있다. 한 편의 시인 팔복선언은 산상수훈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을 때 팔복선언에 등장하는 여덟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윤리의 이상적 모델인 완전한 사람(마 5:48)을 보여준다. 그들은 가난과 굶주림과 박해와 슬픔을 신앙의 계기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온유함과 긍휼과 깨끗한 마음과 평화의 실천은 하나님이 일하시기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그들이 바로 어린이와 같은 존재들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다(마 19:14).

200426 산상수훈(24) 행위의 반석(마 7:24-27)

[설교요약] 본문은 산상수훈 결론의 마지막 문단으로서 예수님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종말의 구원과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반석은 예수의 말씀이다. 그리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은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예수가 아닌 다른 것, 욕망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비유의 이슈는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따라 행하느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보이는 것은 모래 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래 위에 높고 아름다운 집을 빠른 속도로 세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현실에서 비록 더디더라도 예수의 말씀 위에 튼튼한 집을 세우자.

200419 산상수훈(23) 정행 (마 7:15-23)

[설교요약] 산상수훈이 제시하는 거짓 예언자를 판별하는 기준은 교리가 아니라 행위이다. 이단과 대조되는 바른 신앙은 단지 “정통”(orthodox)이 아니라 “정행”(orthopraxis)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그러나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성찰하는 기준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200329 산상수훈(22) 좁을 문을 발견하기 (마 7:13-14)

[설교요약]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은 “찾는” 사람이 적다. 여기에서 찾는다는 말은 추구한다, 찾아 나선다는 뜻이 아니라 발견한다(find)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의 길은 힘들어서 못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찾아내지 못해서 못 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그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 말씀하시며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셨다. 그는 “재산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떠나갔다. 재산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의 재산은 하늘 보화보다 많았다. 그가 하늘 보화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의 문은 넓은 문이다. 그래서 잘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잘 보이지 않는 좁은 문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200322 산상수훈(21) 역지사지 (마 7:12)

[설교요약]
산상수훈의 본론은 “율법과 예언자들”로 수미상관을 이룬다(5:17; 7:12). 이 어구는 율법서와 예언서 곧 구약성서를 의미하며 유대교 전통을 대변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그
유대교 전통을 완성하시며 동시에 뛰어넘으시는 분이시다. 본문은 율법서와 예언서를 황금률로 요약하며 결론을 시작한다. 이것은 보편적인 가르침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동기와 능력에서 거룩한 것이지만 결과로 나타나는 삶의 모습은 지극이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동기와 능력은 하늘에서 오지만 삶의 터전은 이 땅이기 때문이다. 요
즘과 같은 때는 더욱, 가장 시민답게 가장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것 이다.

200315 산상수훈(20) 완전한 관계 (마 7:7-11)

[설교요약]본문에서 7-8절이 논지이고, 9-10절은 논지를 입증하기 위한 예시이며, 11절은 그 예시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에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말은 없으며, “반복해서 간절히” 구하라는 함의도 전혀 들어있지 않다. 본문의 강조점은 “구하여라”가 아니라 “주실 것이다”에 있다. 본문은 산상수훈 윤리의 이상인 완전한 사람이 하나님과 맺는 완전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 관계에서 우리는 “좋은 것”만을 구하며,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모두 “좋은 것”으로 여기신다. 타락 이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맺었던, 바로 그 관계이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는 것은 그 완전한 관계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사귐의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종종 그 완전한 관계를 미리 맛보곤 한다.

200308 산상수훈(19) 성찰 (마 7:1-6)

[설교요약]개역개정판은 “비판하다”, 새번역은 “심판하다”로 번역한 헬라어 “크리노”는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 우리의 사고 작용을 가리키며, 그에 기초하여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거나 남을 비판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서 그 사고 작용은 보는 것으로 그리고 판결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남의 눈에서 티를 빼내 주는 것으로 비유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보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남의 눈을 티를 빼내주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바로 보고 분별하여,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나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코로나 감염증의 불안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분별력을 가로막는 들보, 특히 불안과 두려움과 증오 같은 감정들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200301 산상수훈(18) 먼저 그 나라 (마 6:31-33)

[설교요약]교회는 처음부터 주일에 한 곳에 모여 예배 드리기에 힘써왔다. 힘쓴다는 말은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한 장소에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림으로써 우리의 최선을 다한다. 그것은 또한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주 되심은 언약 관계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언약에 대한 그분의 신실하심을 뜻한다. 언약은 쌍방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주 되심은 우리의 신실한 백성 됨을 요청한다. 우리의 신실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이다.

200223 산상수훈(17) 하나님을 믿으라 (마 6:25-34)

[설교요약]“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는 질문에 대해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하고 대답하신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마음을 하늘에 두는 것이며 돈의 지배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돈은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 염려를 무기로 사용한다. 불안과 불신과 결합된 염려이다.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 예수님은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 곧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염려가 우리의 존재를 상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불안과 불신을 확산시킨다. 소통을 통해 불신을 신뢰로 바꾸고 공동체를 바탕으로 불안을 극복하여 염려를 이기자.

주일예배 안내

8월 2일 오전 11시(온라인예배)

설교자: 강윤주 목사 (모새골공동체교회)

본문:  마태복음 14장 13-21절, 이사야서 55장 1-3절

제목: “밥상 속에 담긴 하나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