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200216 산상수훈(16) 마음을 하늘에 두라 (마 6:19-24)

[설교요약]산상수훈 본론 첫 단락(5:17-48)의 주제인 “마음에 주 되심”과 둘째 단락(6:1-18)의 주제인 “하늘과 땅의 상응”이 셋째 단락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우리의 마음의 변화를 통해 어떻게 하늘을 땅에 실현할 것인가?”이것이 셋째 단락의 중심 질문이다. 첫 단락은 윤리의 원칙을 보여주고, 둘째 단락이 영성의 원리를 가르쳐준다면, 셋째 단락은 우리의 영성과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알려준다. 그 가운데 첫 부분인 오늘의 본문은 “재물”의 소유에 촛점을 맞춘다. 본문은 세 구절로 구성되는데, 가운데 있는 비유가 앞 뒤 구절을 연결해 준다. 순서대로 본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마음을 땅에 두지 말고 하늘에 두라. (2) 마음이 한결 같아서 둘로 나뉘지 않아야 한다. (3)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을 두라.

200209 산상수훈(15) 우리를 위한 기도 (마 6:12-13)

[설교요약]주의 기도는 하늘과 땅을 오가며 진행된다.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참 사람 되게 하는 것이 주의 기도이다. 다섯째 간구에서, 우리의 용서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킨다. 우리의 용서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가 간접적으로 경험된다. 용서를 통해 하늘의 은혜가 땅으로 흘러내린다. 여섯째 간구에 나오는 시험은 욥의 시험에 가장 가깝다. 사탄이 욥을 시험하고자 했고,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셨다. 욥기가 하나님께서 사탄의 활동을 한시적으로 허락하셨다고 말하는 점은 묵시종말론이 악의 존재를 설명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를 시험으로 이끌어들이지 말아 달라는 여섯째 간구는 우리가 파라오의 질서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는 종말을 지향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늘과 땅을 이어가는 것이다.

200202 산상수훈(14) 용서 (마 6:12,14-15)

[설교요약]주의 기도 다섯째 대목은 죄를 채무에 비유한다. 이는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 관계를 고대 그리스-로마의 선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잘 이해할 수 있다. 고대의 선물 관행에서 선물과 은혜는 받은 사람에게 채무가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언약 관계가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의 빚을 진자들이 되었다. 그 은혜의 빚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풂으로써 갚을 수 있다. 우리는 은혜의 빚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것은 우리가 용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뜻한다. 이웃을 용서하고 용납할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용서하자.

200126 산상수훈(13)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마 6:11)

[설교요약]흔히 “일용할 양식”으로 번역되는 어구에서 헬라어 “에피우시오스”는 “존재에 필요한”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마 6:8)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무한한 욕망의 추구를 중지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자족의 기도이기도 하다. 나아가서 이 기도는 “우리”의 구성원들을 함께 염려하는 공동체의 기도이다. 지구 한편에는 10억 가까운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반면 우리의 식탁과 냉장고에서는 매일 많은 양의 식량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는 현실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자족하며 이웃을 마음에 품는다.

200119 산상수훈(12) 하나님을 위한 기도 (마 6:9-10)

[설교요약]주의 기도의 절반은 하나님을 위한 기도이다. 정상적인 대화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와 상대방에 관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듯,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이기에 우리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이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일까? 주의 기도에 담겨 있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는 3인칭 명령법을 사용한 내어드림의 기도이다. 하나님의 주 되심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도록 그 뜻을 받아들이며 주님께 우리를 내어드리고, 그리 함으로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일에 우리도 주체로서 함께 참여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200112 산상수훈(11) 신뢰의 기도 (마 6:7-15)

[설교요약]본문은 먼저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잘못된 기도의 사례를 보여준다. 그것은 많은 말을 해야 하나님의 귀에 들려지리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셔서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 관해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의 주 되심의 기도로 바꾸어야 한다. 주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그것은 신뢰에 기반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다. 이러한 신뢰의 관계는 기도의 토대이며 동시에 목표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도의 이상을 시편 131편에 나오는,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젖 뗀 아이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200105 “소통을 잘하는 교회” (엡 4:15-16)

[설교요약]그루터기교회가 꾸준히 성장하며 젊어지고 있다. 새 교우들이 순조롭게 정착할 뿐 아니라 전통이 새물결을 만나 교회가 온고이지신 하고 있다. 그와 함께 젊은 세대와 새 교우들로 리더십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청소년들과 청년의 상상력이 장년의 경험과 어우러져 공동체가 새로워지고 있다. 그 바탕에는 양보와 관용의 문화가 있다. 거기에 새로운 소통 방식이 더해져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 몸의 지체들은 그리스도께 속하여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각 마디를 통해 수평적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다. 몸의 소리를 잘 들어야 건강할 수 있듯이, 소통이 잘 되어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 또 그리할 때 각 지체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다.

191229 산상수훈(10) 숨은 곳을 보시는 하나님 (마 6:1-18)

[설교요약]산상수훈 본론의 첫 단락(5:17-48)이 여섯 가지 율법 조항들을 재해석하여 율법주의자들의 의보다 더 나은 하나님 나라의 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면, 둘째 단락(6:1-18)은 그 의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율법주의자들의 실천과 대조하여 가르쳐준다. 둘째 단락은 유대적 경건의 세 가지 표지인 자선, 기도, 금식을 주제로 율법주의자들의 의가 위선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율법이 사람의 도덕성을 외면적 행위로 판단하고, 그것은 곧 하나의 스펙이 되기 때문에,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도덕과 신앙의 점수를 조작하는 일, 곧 위선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숨은 것을 보시는 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존재의 나무를 가꾸기에 힘쓰자.

191222 산상수훈(9) 존재의 윤리 (마 5:38-48)

[설교요약]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 원수가 된다. 물리적 폭력과 인격적 모욕은 가해자를 원수로 만들고, 법적 다툼과 경제적 손실로 인해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 정치적 억압과 군사적 침략이 지배자를 원수로 만들기도 한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명하신다. 그것은 이 세상을 이웃과 원수로 나누는 이분법을 경계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완전한 사람”은 우리의 행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모델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 모델이시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존재의 윤리이다.

191215 “산상수훈(8) 맹세가 필요없는 사람” (마 5:33-37)

[설교요약]33절의 구약 인용문은 두 개의 명령을 담고 있다. (1)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레 19:12). (2)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님께 지키라(민수기 30:2; 신명기23:21). 첫 사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 맹세하는 것이고, 둘째 사례는 하나님께 직접 서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맥락은 주로 첫 사례와 관련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려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추천서를 자기 손으로 쓰는 것과 같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입술이 아니라 삶으로 말하자. 맹세가 필요없는 진실한 사람이 되자. 하나님의 이름이 말이 아니라 나의 존재에 있게 하자.

주일 예배 안내

2024년 3월 31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누가복음 24:1 – 12

제목:   누가복음(39) 부활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