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10124 창세기(27) 노아의 후손 (창9:18-10:32; 11:10-32)

[설교요약]미국 역사 초기 백인들은 노아의 세 아들 이야기를 이용하여 흑인 노예 제도를 정당화 하려 했다. 함의 후손인 흑인들이 야벳의 후손인 백인들을 섬기는 것이 성경에 이미 예정된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본문과 문자적으로 불일치한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그 세 아들이 인종의 구분과 무관함을 잘 보여준다. 노아가 저주한 대상은 함이 아니라 함의 아들 가나안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지배와도 무관하다. 두 가지 기준으로 우리의 성서 해석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1) 본문이 허용하는 해석인가? (2) 성서 해석이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들에 대한 지배나 차별을 정당화 하고 있지는 않은가?

200110 창세기(25) 무지개 언약: 생명 존중 (창 9:1-17)

[설교요약]돌아감의 목표는 언약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가 끝난 후 창조의 언약을 갱신하셨다. 이 무지개 언약에서 하나님은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생물을 언약의 대상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언약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육식을 허용하시되 고기를 피채 먹지는 말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생명을 존중하라는 요구이다. 육식에 대한 허용이 약육강식에 대한 허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식탁에서 창조의 샬롬을 이루자.

201220 창세기(22) 다시 처음으로 (창 7:1-24)

[설교요약]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창세기의 종말론이다. 하늘의 창문이 열려 “하맙불” 곧 궁창 위에 있던 물이 쏟아져 내리고 깊음(트홈)의 샘들이 터져 지표면으로 물이 올라왔다. 그 결과 온 땅은 물로 덮인 창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그 때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물 위에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고 계셨다. 홍수가 난 후 물 위에는 방주가 떠다니고 있었다.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가신 사건이었다. 그 은혜는 생명의 은혜이며 창조세계의 은혜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은혜에 반응하는 삶을 살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자. 크리스마스는 하맙불 위에 계시던 하나님 사람이 되어, 홍수(하맙불)로 멸망 할 세상 속에 들어오심으로써 은혜에 반응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신 사건이다.

201213 창세기(21) 노아: 은혜를 입은 자 (창 6:5-22)

[설교요약]노아의 홍수는 하나님께서 창조를 돌이키심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하나님도 하신 일을 돌이키시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선택의 자유에 기반한 언약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였다. 그것은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언약에 신실했다는 뜻이다. 인류문명은 욕망의 분모를 조절하지 않은 채 소유이 분자를 늘여 만족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최근의 소비경제는 소비를 늘이기 위해 사람의 욕망을 더 자극한다. 사람을 만족하지 못하게 하고 행복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자연 자원을 무한 개발하려 한다. 이것은 은혜의 인식에 기반한 감사의 삶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은혜를 알고 욕망을 조절하여 자족하는 방향으로 인류의 길을 바꾸어야 한다.

201206 창세기(20) 영원한 삶의 욕망(창 6:1-4)

[설교요약]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상적 존재들을 가리키는 숙어적 표현이다(시 29:1; 욥 1:6; 단 3:25). 본문은 천상적 존재들과 사람의 딸들과의 결혼이 강제적 또는 폭력적이었다거나 전자의 주도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천상적 존재와 혼인 관계를 맺음으로 불멸을 획득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네피림이라는 돌연변이였을 뿐이며, 영생으로부터는 오히려 더 멀어졌다(3절). 욕망에 지배당한 채 영원히 사는 것은 결코 복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인생의 한 점은 하나님의 영원이라는 무한한 선의 일부임을 기억하자.

주일 예배 안내

2021년 1월 24일 오전 11시(온라인예배)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창세기 9:18-10:32, 11:10-32

제목: 창세기(27) 노아의 후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