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0301 산상수훈(18) 먼저 그 나라 (마 6:31-33)

[설교요약]교회는 처음부터 주일에 한 곳에 모여 예배 드리기에 힘써왔다. 힘쓴다는 말은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한 장소에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림으로써 우리의 최선을 다한다. 그것은 또한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주 되심은 언약 관계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언약에 대한 그분의 신실하심을 뜻한다. 언약은 쌍방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주 되심은 우리의 신실한 백성 됨을 요청한다. 우리의 신실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이다.

200223 산상수훈(17) 하나님을 믿으라 (마 6:25-34)

[설교요약]“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는 질문에 대해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하고 대답하신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마음을 하늘에 두는 것이며 돈의 지배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돈은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 염려를 무기로 사용한다. 불안과 불신과 결합된 염려이다.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 예수님은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 곧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염려가 우리의 존재를 상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불안과 불신을 확산시킨다. 소통을 통해 불신을 신뢰로 바꾸고 공동체를 바탕으로 불안을 극복하여 염려를 이기자.

200216 산상수훈(16) 마음을 하늘에 두라 (마 6:19-24)

[설교요약]산상수훈 본론 첫 단락(5:17-48)의 주제인 “마음에 주 되심”과 둘째 단락(6:1-18)의 주제인 “하늘과 땅의 상응”이 셋째 단락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우리의 마음의 변화를 통해 어떻게 하늘을 땅에 실현할 것인가?”이것이 셋째 단락의 중심 질문이다. 첫 단락은 윤리의 원칙을 보여주고, 둘째 단락이 영성의 원리를 가르쳐준다면, 셋째 단락은 우리의 영성과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알려준다. 그 가운데 첫 부분인 오늘의 본문은 “재물”의 소유에 촛점을 맞춘다. 본문은 세 구절로 구성되는데, 가운데 있는 비유가 앞 뒤 구절을 연결해 준다. 순서대로 본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마음을 땅에 두지 말고 하늘에 두라. (2) 마음이 한결 같아서 둘로 나뉘지 않아야 한다. (3)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을 두라.

200209 산상수훈(15) 우리를 위한 기도 (마 6:12-13)

[설교요약]주의 기도는 하늘과 땅을 오가며 진행된다.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참 사람 되게 하는 것이 주의 기도이다. 다섯째 간구에서, 우리의 용서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킨다. 우리의 용서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가 간접적으로 경험된다. 용서를 통해 하늘의 은혜가 땅으로 흘러내린다. 여섯째 간구에 나오는 시험은 욥의 시험에 가장 가깝다. 사탄이 욥을 시험하고자 했고,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셨다. 욥기가 하나님께서 사탄의 활동을 한시적으로 허락하셨다고 말하는 점은 묵시종말론이 악의 존재를 설명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를 시험으로 이끌어들이지 말아 달라는 여섯째 간구는 우리가 파라오의 질서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는 종말을 지향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늘과 땅을 이어가는 것이다.

200202 산상수훈(14) 용서 (마 6:12,14-15)

[설교요약]주의 기도 다섯째 대목은 죄를 채무에 비유한다. 이는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 관계를 고대 그리스-로마의 선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잘 이해할 수 있다. 고대의 선물 관행에서 선물과 은혜는 받은 사람에게 채무가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언약 관계가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의 빚을 진자들이 되었다. 그 은혜의 빚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풂으로써 갚을 수 있다. 우리는 은혜의 빚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것은 우리가 용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뜻한다. 이웃을 용서하고 용납할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용서하자.

200126 산상수훈(13)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마 6:11)

[설교요약]흔히 “일용할 양식”으로 번역되는 어구에서 헬라어 “에피우시오스”는 “존재에 필요한”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마 6:8)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무한한 욕망의 추구를 중지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자족의 기도이기도 하다. 나아가서 이 기도는 “우리”의 구성원들을 함께 염려하는 공동체의 기도이다. 지구 한편에는 10억 가까운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반면 우리의 식탁과 냉장고에서는 매일 많은 양의 식량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는 현실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자족하며 이웃을 마음에 품는다.

주일예배 안내

5월 31일 오전 11시(온라인예배)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사도행전 2장 5-11절

제목: “코로나와 성령강림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