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60110 성령에 이끌려 상상하자

[설교요약]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동일한 저자에 의해 2부작으로 저술되었기 때문에, 누가-행전(Luke-Acts)으로 함께 다루어진다. 누가복음이 예수의 이야기라면 사도행전은 제자들의 이야기, 교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더 자세히 읽어보면,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교회가 아니라 성령이다. 그래서 성령행전이라 불린다.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탄생과 공생애가 성령으로 시작되듯이, 사도행전의 모든 사건들은 성령 강림과 함께 시작되고 성령이 주도하시는 가운데 진행되어간다. 사도행전은 의도적인 미완성 작품이다. 그것은 그 뒷 이야기를 독자들의 삶으로 완성하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루터기교회의 새로운 20년은 사도행전의 뒷 이야기이다. 그 성령의 이야기를 우리가 함께 이어가자.

160103 새로운 20년을 상상하자

[설교요약] 새로운 20년을 (함께) 상상하자! 이것은 창립2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그루터기교회의 표어이다. 담임목사가 목표를 제시하고 교우들은 피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온 교우들이 주체가 되어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이루어가자는 뜻을 담았다. 한국교회와 사회에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때이다. 그러나 고연령화로 리더십이 정체되어 있고, 젊은 세대는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한 채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그루터기 교회가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곧 사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20년이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까? 그 답을 성령이 가지고 계시다. 젊음의 유연함으로, 성령의 이끄심에 우리를 내어 드리자.

151227 종말은 끝이 아니다

[설교요약] 예수의 부활과 그에 이은 성령 강림은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토대가 된 사건인데, 두 사건은 모두 구약성경이 말하는 종말 사건들에 속한다. 즉, 예수의 오심은 구약이 예고한 종말의 성취였다. 그런데 종말, 즉 마지막 날이라는 표현은 계시록에 담겨 있는 자연 파괴의 이미지들과 결합되어 종종 심각한 오해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다. 종말을 맞이하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죄의 세력, 곧 파라오의 질서이다. 종말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다.

151225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설교요약]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사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주께서 그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기억하셔서 이집트로 다시 찾아가 그 백성을 노예 상태로부터 속량하셨고, 바벨론으로 다시 찾아가 그들을 포로 상태로부터 속량하셨다. 그 하나님이 십자가로 우리를 다시 찾아오신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의 속량은 그전의 것들과 다르다. 그것은 한 주인으로부터 속량되어 다른 주인에게 다시 예속되는 일시적인 속량이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 영원히 해방되는 완전한 속량이다.

151220 기다림은 부재가 아니다

[설교요약] 이사야를 비롯한 여러 예언자들이 예고하는 주님의 오심은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종말적 사건이다. 그러한 사건은 포로귀환 후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제국의 지배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현실에서 주님의 오심에 대한 기대가 이어졌고, 그것이 예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으며,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로 계속되고 있다. 그 오랜 기다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우리의 기다림이 부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카이로스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의 작은 개입을 통해 크로노스의 미래에 있을 그분의 결정적 개입을 미리 맛보기 때문이다.

151213 들풀의 열매라도

[설교요약] 이사야 40:6-8에 나오는 ‘들풀과 꽃의 비유’는, 그 앞에 나오는 ‘도로공사의 비유’(3-5절)와 연결되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과 그렇지 못한 이스라엘을 대조한다. 누가복음 3장은 도로공사의 비유를 인용하여 이를 회개의 선포로 발전시킨다. 요한은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 자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요구하는데, 그것은 파라오의 질서의 말단으로 기능하며 그 질서를 유지시키고 있는 세리와 군인들에 대한 준엄한 촉구로 나타난다. 우리가 맺는 것은 빈약한 들풀의 열매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들풀과 같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그 열매를 기쁘게 받으신다.

주일 예배 안내

2024년 4월 21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누가복음 22:24 – 27

제목:   교회의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