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성 목사

200719 창세기(6) 창세의 조력자 (창 1:11-12, 20-21, 24-25)

[설교요약]하나님은 6일간 홀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까?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도운 조력자들이 있었다. 셋째 날 하나님은 땅에게 식물을 내라고 명하셨다. 다섯째 날은 물에게 생물로 번성하라 명하셨고, 여섯째 날은 다시 땅에게 동물들을 내게 하셨다. 땅이 식물을 낸다는 아이디어는 예수님의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에도 담겨 있으며, 계시록 첫째 나팔 재앙에도 포함되어 있다. 땅이 식물을 낸다는 생각은 아마도 고대의 자연관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창세기는 고대의 우주관을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활용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과학 연구 결과들도 하나님의 창조 안에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창조신앙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며 동시에 창조세계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200712 다스림의 사명 (창 1:14-19,26-28)

[설교요약]넷째 날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낮과 밤을 나누는 사명을 주셨다. 낮과 밤을 나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둘째 날 이미 나누어 놓으신 낮과 밤, 곧 시간을 알리는 표시가 된다는 뜻이다. 여섯째 날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쩰렘)으로 창조하시고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사명을 주셨다. 모든 창조세계의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리는 표시로 사람을 지으신 것이다. 산상수훈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으로 요약되는데, 이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여름 한낮에 찬란하게 작렬하는, 그러나 사람들이 피하는 태양이 되기보다 동토를 녹이고 생명을 품어주는 따뜻한 봄볕이 되어보면 어떨까?

200705 하늘이 존재하는 이유 (창 1:6-8,14-19)

[설교요약]창조 이야기는 고대의 우주관을 토대로 서술되었다. 돔 경기장의 천장과 같은 반구형의 궁창에 해와 달과 별들이 박혀 있다. 그 궁창 위에 물이 있어 때로 창문을 통해 비나 눈이 내린다. 과학은 시대적인 것이며, 언어와 문화와 함께 하나님의 진리를 계시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그릇일 뿐, 그 자체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진리는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읽으면 안된다. 창세기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말하지 않는다. 창세기의 관심사는 물질의 창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혼돈으로부터 샬롬의 창조이다. 우리가 하늘의 창조에서 배우는 것은 허공에도 뜻이 있다는 것이다. 창조는 채움이면서 동시에 비움이다. 샬롬은 채워짐이기도 하고 비워짐이기도 하다.

200517 코로나와 한국의 청년 (엡 1:16-19)

[설교요약]기성세대의 청년 담론에서 청년은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청년이 스스로 말해야 주체가 될 수 있다. 코로나의 재난 상황은 위기이며 동시에 청년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적 국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켜온 세계화의 고질적 문제가 코로나19로 인해 더 분명히 부각되었으며, 세계화의 토대가 되어 온 연결성과 이동성이 현저히 저하되어 분절화와 디커플링이 심화되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세상의 그림을 그려야 할 때이다. 여기에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시사적 안목과 성서적 통찰력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영을 주셔서 현실을 꿰뚫어보게 하시고, 계시의 영을 주셔서 우리의 한계 너머를 볼 수 있게 하시길 바란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청년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실현하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자.

주일예배 안내

9월 20일 오전 11시(온라인예배)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창세기 2장 18-25절

제목: “창세기(12) 가까이서 돕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