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성 목사

200517 코로나와 한국의 청년 (엡 1:16-19)

[설교요약]기성세대의 청년 담론에서 청년은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청년이 스스로 말해야 주체가 될 수 있다. 코로나의 재난 상황은 위기이며 동시에 청년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적 국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켜온 세계화의 고질적 문제가 코로나19로 인해 더 분명히 부각되었으며, 세계화의 토대가 되어 온 연결성과 이동성이 현저히 저하되어 분절화와 디커플링이 심화되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세상의 그림을 그려야 할 때이다. 여기에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시사적 안목과 성서적 통찰력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영을 주셔서 현실을 꿰뚫어보게 하시고, 계시의 영을 주셔서 우리의 한계 너머를 볼 수 있게 하시길 바란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청년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실현하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자.

200510 “부모 되기, 부모 알기” (삼하 18:5-8)

[설교요약]다윗과 압살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부모를 알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다윗은 신실한 신앙인이자 치밀한 전략가이고 용맹한 장수였지만 아버지로서는 서툰 사람이었다. 그의 자녀들 사이에 크고 작은 불화가 계속되었지만 그 일들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그것은 결국 압살롬의 반란으로 이어진다. 압살롬이 정치적 야망을 품었을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동인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의 좌절 그리고 아버지에게 용서받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다. 다윗은 자녀들에게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고, 그것이 압살롬과의 전투 중에 표출된다 …

200503 산상수훈(25) 복되다(마 5:3-12)

[설교요약] 시에는 생략의 미학이 담겨 있다. 열 마디로 할 것을 두 세 마디로 함축해 내는 것이 시이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는 생략된 정보를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 그 정보들은 올바른 맥락에 놓일 때 가장 적절히 채워질 수 있다. 한 편의 시인 팔복선언은 산상수훈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을 때 팔복선언에 등장하는 여덟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윤리의 이상적 모델인 완전한 사람(마 5:48)을 보여준다. 그들은 가난과 굶주림과 박해와 슬픔을 신앙의 계기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온유함과 긍휼과 깨끗한 마음과 평화의 실천은 하나님이 일하시기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그들이 바로 어린이와 같은 존재들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다(마 19:14).

200426 산상수훈(24) 행위의 반석(마 7:24-27)

[설교요약] 본문은 산상수훈 결론의 마지막 문단으로서 예수님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종말의 구원과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반석은 예수의 말씀이다. 그리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은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예수가 아닌 다른 것, 욕망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비유의 이슈는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따라 행하느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보이는 것은 모래 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래 위에 높고 아름다운 집을 빠른 속도로 세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현실에서 비록 더디더라도 예수의 말씀 위에 튼튼한 집을 세우자.

200419 산상수훈(23) 정행 (마 7:15-23)

[설교요약] 산상수훈이 제시하는 거짓 예언자를 판별하는 기준은 교리가 아니라 행위이다. 이단과 대조되는 바른 신앙은 단지 “정통”(orthodox)이 아니라 “정행”(orthopraxis)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그러나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성찰하는 기준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주일예배 안내

7월 5일 오전 11시(온라인예배)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창세기 1장 14-19절

제목: “창세기(4) 창조의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