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3:1-6]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앞부분이 녹화가 안되었습니다 목사님 설교하신 앞부분 내용입니다
지난 주 설교 중에, 열두살 때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던 예수가 성전에서 그 부모에게 하셨던 말씀, 곧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하신 말씀을 통해 존재와 사명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때 그 일을 하게 하기 위해 보내신 바로 그 일입니다. 우리가 그 일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그 일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우리를 보내셨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를 그 일에 가장 부합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성격이 서고 다르고 재능이 서로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고자 하시는 일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꾸어 말하자면, 사명이란 우리의 존재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의 존재는 그 사명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를 실현하는 것이 곧 우리의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명’하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가학적인 악취미가 있으셔서 우리가 싫어하시는 일을 억지로 맡기시겠습니까?
사명이란 우리의 존재에 부합하는 것이고 우리의 존재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일을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세례 요한에 대해 묵상해보려 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를 위해 존재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예수를 위해 산 사람”으로 하지 않고 “예수를 위해 존재한 사람”이라고 붙인 이유는 그것이 요한의 사명이었음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요한은 어찌하다가 또는 그의 선택이나 외부의 강제에 의해 예수를 위해 산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가 예수를 위해 있었던 사람, 예수를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 어머니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겨우 여섯 달이 지난 태아의 상태로 아기 예수의 소식을 들었을 때, 태중에서 이미 기뻐 뛰어놀았던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명, 그가 이 땅에 온 목적은 오직 예수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서 예수의 소식을 듣고 태속에서도 기뻐 뛰놀았던 세례 요한, 그는 진정 예수를 위해 존재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위해 태어난 존재인 요한의 사명은 그의 아버지 사가랴가 요한의 탄생을 기뻐하며 부른 노래인 사가랴의 찬가, 즉 베네딕투스에 잘 나타납디다. 누가복음 1장 69-79에 나오는 사가랴의 노래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전반부인 68=75졸에서는, 백성을 돌보아 속량하셨음을 찬양한 후, 후반부인 76-79절에서는, 그 일에서 자신의 아들 세례 요한이 담당한 역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노래가 세례요한의 탄생을 기뻐하는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노래의 주인공은 요한이 아니라 구원자 예수이며 요한은 단지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은 예수를 위해 존재한 사람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또 이는 동시에 요한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사가랴마저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를 위해 태어난 자신의 아들 요한의 사명을 예고하는 76절은 그런 점에서 보는 이의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합니다.
아가야, 너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앞서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이제 세상에 막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그 아기가 천재이길 기대하고 또 뛰어난 능력으로 최고의 존재가 되길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 사가랴에게도 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잉태되기 전에 천사의 예고를 듣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된 사가랴에게 그러한 세속적 욕망은 더 이상 그를 끄는 유혹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아들 요한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 때문에, 예수를 위해 태어난 존재,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요한의 사명을 함께 기뻐하며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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