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71224 로마서(18) 생명의 성령의 법 (롬 8:1-4)

[설교요약]인간의 비극의 핵심은 죽음이다. 율법에게 기대된 것은 죽음의 지배 가운데 있는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율법은 오히려 죄의 지배에 악용되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 예수는 죄의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를 포위하고 육신 안에서 활동하는 죄를 심판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죄와 사망의 법’이 죄의 지배에 사용되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끈 율법의 한계를 보여준다면, ‘생명의 성령의 법’은 죄의 지배를 폭로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한 율법의 기여를 대변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으므로 심판을 받지 않는다.

171217 로마서(17) 율법을 통한 죄의 지배 (롬 7:7-25)

[설교요약]율법이 오기 전에도 죄가 지배하고 있었다. 단지 죄가 죄로서 인지되지 않았을 뿐이다. 율법은 우리의 개별적인 범죄 행위를 인지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지배하는 죄의 세력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러나 율법은 이처럼 죄를 드러내 주면서도, 정작 그 죄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 드러난 죄가 오히려 율법을 이용하여 우리를 속이고 우리를 지배한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죄는 율법을 통해 오히려 지배를 강화한다. 그러한 죄의 기만에 넘어가지 말자. 율법은 죄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죄의 암덩이를 녹인다. 은혜를 붙들자.

171210 로마서(16) 은혜의 통치

[설교요약]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6:14). 이것을 방종의 근거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은혜 아래 있음이 무엇을 뜻하는지(6:15-23) 그리고 율법 아래 있지 않음을 무엇을 뜻하는지(7:1-6) 차례차례 설명해 나간다.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구원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은혜의 통치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5:21).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지 말고, 순종의 종(17), 의의 종(18-19), 하나님의 종이 되라(22). 그것은 국적을 바꾸는 것과 같다. 우리의 죄의 지배, 즉 사탄의 나라로부터 하나님 나라로 국적을 바꾸었기 때문에, 죄의 지배의 매개가 되던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7:1-6). 하나님의 주 되심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규범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171203 로마서(15) 생명의 시대 (롬 6:1-11)

[설교요약]우리의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사람으로 예수와 함께 시작된 생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비록 하나님 나라와 파라오의 질서가 공존하므로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과도기를 살아가지만, 그 죄의 지배는 이미 독침을 제거당하고 파멸의 내리막을 치닫고 있다. 그러므로 죄의 노예 상태로 돌아가려 하지 말고 새 시대의 시민답게 살자. 죄의 아바타에 불과하던 왜곡된 자아를 벗어버리고, 참 자아를 회복하여, 주님 안에 있는 참 자유를 누리자.

171126 로마서(14) 죄의 지배로부터의 자유 (롬 5:12-21)

[설교요약]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는 관건은 죄의 지배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주제를 다루는 로마서 5-7장 가운데 첫 단락인 5:12-21은 죄의 지배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또 어떻게 끝나는지를 미리 보여준다. 인간의 죄란 단순히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 되심을 거부하고 죄의 지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지배)는 율법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다. 아담이 이 세상에 죄(의 지배)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 죽음이 들어왔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죄(의 지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순종, 즉 신실함을 통해 끝난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된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그 자유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교회는 자유의 훈련장이다.

171119 로마서(13) 구원을 이루어 감 (롬 5:1-2, 9-10, 19)

[설교요약]믿음과 구원은 과정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 되심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구원받았으나 아직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는 못한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 살아간다. 로마서는 구원을 칭의, 성화, 영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서술한다. 칭의, 성화, 영화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동일한 구원 사건의 여러 측면이다. 구원이란 죽은 후에 타는 천국 행 열차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계속되는 경주이다. 그럼 우리는 이 경주를 무사히 마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성경은 그것을 기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확실성은 오직 하나님께 있을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를 의롭게 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다.

171112 “로마서(12) 영광의 소망” (롬 5:1-11)

[설교요약] 신학적 개념들에 대한 3인칭 서술이 주를 이루는 로마서 1-4장과 달리, 5장부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적인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4장까지의 내용이 하나님 백성의 신분에 관한 것으로,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이라면, 로마서 5-8장은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그 원리를 보여준다. 그 삶의 원리는 ‘평화,’ ‘소망,’ ‘영광,’ ‘환란,’ ‘인내,’ ‘성령,’ ‘사랑,’ ‘구원’과 같은 키워드둘에 담겨있다. 5장 2절은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향해 나아가는 삶으로 규정한다. 그 소망은 기계적으로 주어지는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라, 고난을 인내함으로 단련된 인격을 통해 지향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 맘속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사랑을 보증한다.

171105 “로마서(11) 우리의 믿음” (롬 4:23-25)

[설교요약]찰스 탈버트(Charles Talbert)는 바울이 말하는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믿음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2) 믿음은 업적이 아니다. (3) 믿음의 대상은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예수님의 인격이다. (4) 믿음은 행동을 대신하는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다. (5) 믿음이란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6) 믿음은 전인격을 포함한다. (7) 믿음이란 예수를 따르기로 하는 나의 결정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탈버트는 로마서를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읽지 않지만, 믿음에 관한 이 일곱 명제는 하나님 나라 복음과 잘 어울린다. 이 모든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 되심’이기 때문이다.

171029 “로마서(10)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롬 4:16-17)

[설교요약] 유대인들은, 혈통상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배타적 특권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유대인만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육신의 조상이기에 앞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그 언약은, 미래에 태어날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맺는 것이기도 하기에, 자손에 대한 약속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 약속의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살려내시고 없는 것들을 있는 것들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출산 능력에서) 이미 죽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살려내셔서, 무로부터 새로운 언약 백성을 창조해내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언약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 언약 안에 머물렀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171022 “로마서(9) 하나님의 은혜” (롬 4:1-8)

[설교요약]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공평하게 심판하시고 동일한 자격으로 구원하신다면, 주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로마서 4장은 이에 대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유대인의 특권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도 전에는 불경건한 이방인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를 선택하시고 의롭게 하신 것이다. 4장은 ‘여기다,’ ‘쳐 주다’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 ’로기조마이’를 11회나 사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될 자격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런 것으로 쳐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로 우리를 지으셔서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시며, 동일한 은혜로 부르시고 또 보내신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