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1016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설교요약] 밀레도의 고별 설교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릴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사명이 생명보다 중요한 것인가? 사명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대변한다면, 생명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존재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분명한 자존감이 없는 가운데 사명을 강조하면, 그 사명은 율법이 될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일치를 이룰 때, 생명과 사명이 일치될 때 비로소 바울과 같은 고백에 이를 수 있다.

161009 바울의 제자도

[설교요약] 사도행전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는 신적 필연성을 강조하며, 거기에서 투옥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고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왜 가야 하는지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바울은 그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묵묵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에게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언자 야가보를 통해 그 고난을 알게된 성도들은, 처음에는 바울을 만류하지만, 이내 바울의 그 길에 참여자와 지지자가 된다.

161002 에베소

[설교요약] 보통 ‘제3차 전도여행’이라 불리는 기간에 바울은 그의 활동무대를 안디옥에서 에베소로 옮겨 거기에 머물며 그동안 세운 교회들을 관리하고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도왔다. 성서학자들 사이에 견해의 차이는 있으나, 초기 바울서신 7권 중 5권이 이 기간에 기록되었고, 그 외에도 바울과 교회들 사이에 인적교류와 편지교환이 계속되었다. 교회들은 바울에게 헌금을 보내 후원하고 참여할 정도로 성장하였고,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에 직면하여 바울의 신학도 더 체계화되었다. 우리의 신앙도 계속하여 성장해야 한다. 말씀의 섭취와 기도 그리고 실천이 계속될 때 온전하고 균형있는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

160925 당신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설교요약] 데살로니가를 급히 떠난 후 베뢰아를 거쳐 아테네로 가면서도 바울의 마음은 여전히 데살로니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에서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보내 환란 가운데 있는 교회를 격려하게 한다(살전 2:17-3:2). 디모데는 고린도로 돌아와 (행 18:1, 5)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그들이 여전히 바울 일행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그로 인한 바울의 감사와 기쁨이 데살로니가전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이미 죽어버렸으리라 포기했던 가녀린 새싹이 살아 남아 튼튼히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기쁨, 그저 네가 그곳에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인해 느끼는 벅찬 감사이다. 당신으로 인해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160918 그것이 그런가 하여

[설교요약]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반대하며 소동을 일으키곤한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유대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그렇고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그렇다. 바울은 성경을 해석하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며 유대인들과 토론했다(행 17:2-3). 이에 대해 어떤 유대인들은 귀를 막고 소동을 일으키며 거부했으나, 베뢰아의 유대인들은 그것이 정말 그런지 검증하기 위해 성경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매일 그 말씀을 묵상하여 그 말씀으로 자신들의 신앙과 삶을 검증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구원사의 변곡점에서 하나님과 함께 갈 수 있었다.

160911 세상을 뒤집는 사람들

[설교요약]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복음 전도를 방해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세상을 뒤집는 자들이라 하며, 그리스도인들이 황제를 거슬러 행하고 예수라는 다른 왕을 따른다고 고발했다. 그것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를 고발한 산헤드린의 재연이며(눅23:1-5), 빌립보에서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을 고발한 것과도 통한다(행 16:19-21). 그것은 악의적인 왜곡이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잘 드러내어 준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은 단지 종교예식이나 교리들의 모음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생활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파라오의 질서를 뒤집어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160904 특권적인 도시

[설교요약]
빌립보는 콜로니아로서 로마제국의 특권적인 도시였다. 이 도시의 시민들이 향유하는 특권의 이면에는 사람이면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 그 복음은 이 도시의 삶의 방식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도자 바울과 실라를 위험한 존재로 간주하여 박해했다. 바울의 고난목록에는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이 있다. 동족의 위험이 복음과 전통이 충돌할 때 오는 것이라면, 이방인의 위험은 복음이 현실적 이익과 충돌할 때 오는 것이다. 이방인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가 이방인으로 대우 받는 것이다. 파라오의 질서에 속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160828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설교요약]
사도행전의 전도자들도 늘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짙은 안개 속을 걷는 듯한 어두움의 기간이 있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초기 아시아로 가려 하다가 성령이 막으셔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의 시골 길을 방황하고, 또 비두니아로 가려 하다가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드로아로 걸음을 돌리는 암중모색을
반복한다. 그러나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본 후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시아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단, 아직 때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 어두움의 기간, 바울은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었다.

160821 신뢰의 위기

[설교요약] 교회 내에도 의견 대립이 있고 싸움이 있으며 결국 서로 갈라서는 일도 일어난다. 바울과 바나바가 제2차 전도여행에서 서로 다른 길을 간 것은 그러한 수많은 사례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마도 예루살렘 사도회의(행 15장; 갈 2:1-10) 직후에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안디옥 사건(갈 2:11-14)이 두 사람 사이에서 신뢰의 위기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런 헤어짐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그 후에도 바나바를 모범적인 사역자로 평가하며(고전 9:6), 마가를 그 곁에 두고 싶어한다(딤후 4:11). 교회는 그러한 신뢰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으로, 신실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세워져 간다.

160807 하나일 뿐입니다

[설교요약]
교회의 일원이 된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한편에는 이방인들이 이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일원이 되었으므로 언약의 표지인 할례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 있었다. 반대 편 입장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양측은 토론을 통해 타협안을 도출한다. 전자는 생각을 바꾸어 과감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포기했고, 후자는 유대인들의 자부심과 관습을 배려하여 네 가지 금령을 받아들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양편 모두 자신들의 생각은 그저 가능한 많은 생각들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는 늘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 있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회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겸손이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