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0724 전도자 바울

[설교요약]
사울이 회심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소명을 주시며 두 가지를 예고하셨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는 예수의 이름을 위해 고난 받을 것이다. 첫째 측면에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에게 전도할 때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수용자 친화적인 계시의 원리를 따른 것이다. 둘째 측면에서, 그는 예수를 위해 당하는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전도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도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세의 확장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만일 교세의 확장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 파라오의 질서와 같이 같다면, 그리고 전도가 그런 확장에 이바지한다면, 그것은 전도가 아니라 반 전도이다.

160717 사도행전과 현실

[설교요약] 온전히 성령에 이끌려 살아간 사도행전의 제자들의 삶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고자 할 때 현실과의 괴리가 발견된다. 먼저 사도행전에는 뚜렷한 선과 악의 이분법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모든 역사문학이 그렇듯, 사도행전도 이야기의 관습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분법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된다. 또 다른 문제는, 성령에 이끌려 살려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할텐데, 주님께서 우리에게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선명하게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가 방송장비의 앰프나 뉴터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도의 두 가지 목적은 (1)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그분의 뜻을 아는 것이고, (2)그럴 수 있도록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160710 헤롯 아그립바 1세

[설교요약]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로마황제 칼리귤라와 클라우디우스의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 전역을 다스린 막강한 왕이었다. 게다가 그는 유대인 어머니 미리암의 배경을 입고 유대교인으로 행세하여, 유대인들의 지지까지 받았다. 그가 사도들을 죽인 것은 그러한 유대교적 경건을 시위하려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직접 손 보셨다. 그리고 사도행전 8-12장의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간접적이고 역설적인 방법으로도 역사에 개입하시지만, 이렇게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개입하셔서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보여주기도 하신다. 그러한 하나님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주님의 나라를 이루신다.

160703 베드로의 십자가 제자도

[설교요약]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출해 내셨으나 그를 위해 기도하던 성도들이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는 사도행전 12장의 이야기는, 기도하고도 응답을 믿지 못하는, 믿음없는 성도들의 한 사례가 아니다. 이 사건은 누가복음 22:33과 연결하여 읽어야 한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 주를 위해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가겠다고 장담했으나 좌절하고 말았던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신 것이다. 성도들은 베드로를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드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베드로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 당함을 특권으로 여겼다(행 5:41).

160626 신앙과 관습

[설교요약] 우리가 신앙의 본질이라 여기는 것들 중에 사실은 사람들의 관습에 불과한 것이 많다. 신앙이 관습이 되는 것은 한편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소금이 물에 녹듯 신앙이 우리 삶에 들어와 녹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익숙해지다보면 관습이 신앙을 대체해 버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신약성서 당시, 경직된 정결법은 혐오의 관습을 신앙화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 관습의 울타리를 깨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를 변화시키셨다. 한국교회도 그러한 변화가 필요한 때이지 않을까?

160619 앞서 가시는 하나님

[설교요약] 고넬료 가정의 회심은 최초의 이방인 전도 사건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8장에서 빌립을 통해 이미 시작된 이방인 구원 사역을 위해, 9장에서 사울을 준비시키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제 사도 베드로(10장)와 예루살렘 교회(11장)를 어떻게 변화시키시고 준비시키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구원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들에서 오직 성령에 이끌렸다. 우리도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두고, 오직 성령에 이끌리는 교회가 되자.

160612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설교요약] 파라오의 질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협하고 유혹하고 박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그 일들마저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신다. 산헤드린의 박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하나님은 그 흩어짐을 사도행전 1:8을 실현하는 도구로 삼으셨다.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논박하기 위해 복음을 공부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전도자 바울을 만드셨다. 그러한 반전의 정점에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는 악의 극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다. 우리의 현실에서 파라오의 질서는 너무 강하다. 그래서 역사는 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눈을 들어 크게 보면,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심으로, 역사 속에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어 가신다.

160605 신앙과 마술

[설교요약] 마술이란,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영을 조종하는 기술이다. 시몬은 사마리아 성에서 인정받는 마술사였다. 그는 스스로 위대한 자라 말하고 다녔고, 사람들은 그의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 믿었다. 시몬은 빌립을 자신보다 더 뛰어난 마술사로 인식하여 그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는, 그들이 영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돈을 주고 그 능력을 사려 하였다. 그는 믿기 전에 마술사였으나, 믿은 후에도 마술을 버리지 못했고, 결국 마술사로 이야기를 마치게 된다. 그러나 성령은 마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은 사람에 의해 조종되시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충만이란 성령에 온전히 이끌리는 것이다.

160529 디아스포라

[설교요약] 스데반의 순교에 이은 대 박해룰 피해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8:1-4).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의 상황을 사명의 기회로 만드시며, 그로 인해 사도행전 1:8의 예고가 지리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다섯 갈래로 전개된다. ①빌립의 이야기(8:5-40), ②사울의 이야기(9:1-31), ③베드로의 이야기(9:32-11:18), ④무명의 전도자들의 이야기(11:19-30), ⑤예루살렘 교회의 이야기(12장). 이 모든 이야기에서 성령이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며, 그래서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 된다. 흩어진 곳은 부르신 곳이 되며, 흩어진 사람들(디아스포라)은 예수의 증인들이 된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