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0214 부활의 증인

[설교요약]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땅 끝까지 예수의 부활의 증인 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증언의 모범이다. 그 설교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활을 증언하는 것은 다시 사신 예수의 주 되심, 곧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는 어떻게 증언할까? 예수께서 그리하셨듯이, 하나님의 나라를 말로 선포할 뿐 아니라, 예수의 주 되심을 이루는 우리의 삶으로 증언해야 한다. 그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공동체로서 함께 할 때 가능하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 생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160207 땅 끝으로!

[설교요약]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사도행전 1:8의 첫 성취이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다른 지방 언어(방언)로 말하는 능력을 받고, 전 세계 열 다섯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열 다섯 지방 언어로 (땅 끝까지) 하나님의 큰 일을 증언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로마 제국은 땅 끝까지 확장되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제국은 모든 사람을 제국의 언어로 통일하여 지배하려 하는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지방 언어, 즉 땅끝의 언어로 그 사람들을 섬긴다. 제국의 본질은 권력과 부의 집중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땅 끝까지의 확산, 즉 나눔과 섬김이다.

160131 변화된 공동체를 상상하자

사도행전 1장에는 다락방에 모여 성령 강림을 준비하던 사람들의 이름이 나온다. 이것은 개국공신들의 목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십자가가 두려워 전열을 이탈했다가 돌아온 탈영병들의 목록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아예 돌아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하나님은 그 사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그리고 열두번째 사도를 새로이 선택하신다. ‘사도’를 뜻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는 ‘보낸다’는 뜻의 동사 아포스텔로에서 온 것이다. 교회는 그렇게 세상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서로의 이름을 불러 일으켜 주고 서로를 다시 세상으로 파송하는 공동체, 즉 사도 공동체이다.

160124 기도하며 상상하자

사도행전의 제자들이 공동체로서 처음 한 행동은 기다림이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표현이 기도였다. 그 기다림의 기도는 누가-행전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기도를 반영한다. 누가복음에 담긴 예수님의 기도는 사도행전에 담긴 제자들의 기도의 모범이 되는데,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고, 기도를 통해 친히 그 뜻을 이루어 가신다.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계시의 기도가 되어야 하며,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친히 일하시게 하는 내어드림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 기도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것이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160117 하나님의 나라를 상상하자

[설교요약] 사도행전 1장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가 최고조에 달해 있는 가운데 시작된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께 묻는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그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에서, (1) 하나님 나라의 때는 긴장관계에 있다. (2) 그 나라가 가지는 영적이며 동시에 현실적인 성격은 하나의 전제로 깔려 있다. 그리고 (3) 그 나라는 민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온 세상 모든 민족을 포함힌다. 교회는 부활의 증인(1:8, 22), 곧 다시 사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 예수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새로운 20년 우리의 상상의 핵심 주제로 삼자.

160110 성령에 이끌려 상상하자

[설교요약]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동일한 저자에 의해 2부작으로 저술되었기 때문에, 누가-행전(Luke-Acts)으로 함께 다루어진다. 누가복음이 예수의 이야기라면 사도행전은 제자들의 이야기, 교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더 자세히 읽어보면,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교회가 아니라 성령이다. 그래서 성령행전이라 불린다.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탄생과 공생애가 성령으로 시작되듯이, 사도행전의 모든 사건들은 성령 강림과 함께 시작되고 성령이 주도하시는 가운데 진행되어간다. 사도행전은 의도적인 미완성 작품이다. 그것은 그 뒷 이야기를 독자들의 삶으로 완성하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루터기교회의 새로운 20년은 사도행전의 뒷 이야기이다. 그 성령의 이야기를 우리가 함께 이어가자.

160103 새로운 20년을 상상하자

[설교요약] 새로운 20년을 (함께) 상상하자! 이것은 창립2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그루터기교회의 표어이다. 담임목사가 목표를 제시하고 교우들은 피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온 교우들이 주체가 되어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이루어가자는 뜻을 담았다. 한국교회와 사회에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때이다. 그러나 고연령화로 리더십이 정체되어 있고, 젊은 세대는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한 채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그루터기 교회가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곧 사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20년이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까? 그 답을 성령이 가지고 계시다. 젊음의 유연함으로, 성령의 이끄심에 우리를 내어 드리자.

150524 성령: 하나님 나라의 표지

[사도행전 2:16-21]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그의 말씀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이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부활과 성령강림이었다. 성령강림은 구약성경이 예고하던 종말 현상 가운데 하나이었기 때문에, 초대교인들은 성령강림 사건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았다. 신약성서 종말론에는 ‘이미’와 함께 균형을 이루는 ‘아직 아니’라는 또 하나의 차원이 있다. 고린도 교회는 그 균형을 잃어버린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은 이미 나타난 성령의 표지인 은사와 표적과 기사들을 추구한 반면에 약함 가운 나타나는 성령, 즉 성령의 ‘아직 아니’에는 무지했다. 이러한 흐름을 가리켜 승리주의라 한다. 기복신앙도 승리주의의 한 유형이다.

140608 세상의 소통을 촉진하는 교회

[사도행전 2:5-13] 기독교는 소통의 종교이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셨고, 성령이 임하실 때 소통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교회 밖의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그 뿐 아니라, 세속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원활한 소통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편가르기로 전락하기 일쑤이고, 교회는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다. 이를 극복하고 세상의 소통을 촉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복음이 사회적 가치로 창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복음이 재발견되어야 한다. 복음은 교리가 아니라 삶이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