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금년 우리교회의 표어가 “디지털 네이티브와 함께 가는 교회”이다. 여기에는 젊은 세대를 통해 이 시대를 잘 읽어내고 이 시대에 주어진 사명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있다.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젊은이들을 알기 위해서는 “소비사회”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느새 한국도 생산자본주의를 지나 소비자본주의의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데, 2030세대는 그 시대에 태어나서 자라왔다. 그러므로 소비는 젊은이들에게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를 넘어 당연하게 주어져 있는 삶의 방식이다. 소비를 하느냐 마느냐 또는 늘이느냐 줄이느냐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질문을 어떤 소비를 해야 하느냐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소비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룰 수 있을까?
220130 요한복음(31) 목자의 음성을 듣기 (요10)
[설교요약]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중에 자신을 선한 목자로 비유하셨다. 그 배경에는 에스겔서 34장이 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을 잘 돌보지 않아 백성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잘 알고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안다. 이 비유에는 약속과 기대가 담겨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는 약속이며,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친밀하게 소통할 것이라는 기대이다. 그 소통은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잡기 힘든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역사의 급전환기에서 우리는 오히려 잠시 멈추어 서서 주님을 보고 들을 필요가 있다.
220123 요한복음(30) 무엇을 보는가? (요9)
[설교요약]예수 시대 장애인들은 종교적 정죄와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었다. 그 사람이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 묻는 제자들의 질문은 그러한 통념을 대변한다. 장애인을 단지 불행한 존재로 보며 불행의 원인을 찾아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이 장애인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그러한 원인론에 동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주목하셨다. 그를 장애인으로 대하지 않고 한 사람으로 대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9장은 그 사람이 하나의 대상으로부터 주체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220116 요한복음(29)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
[설교요약]“너희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를 적대하던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주신 이 말씀은 그들이 지금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전제한다. 그들은 로마의 속국의 지도자들이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 여겼으며, 자신들의 죄의 지배 아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자유란 우리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일치되어 가는 과정에서 성숙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온전한 자유에 접근해가는 과정이고, 우리는 자유로워져 가는 존재이다.
220109 요한복음(28) 때를 이루어감 (요7)
[설교요약]“예수의 때”란 예수께서 붙잡히심으로 시작되어 수난, 죽음, 부활, 승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날 때를 가리킨다. 예수는 공생애 시작 전부터 이미 그 때를 내다보시고 준비해 가신다.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요한을 예의주시하던 유대인들의 눈이 예수에게로 옮겨가고 그를 향한 적대감이 증폭되어 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예수의 때가 무르익어간다. 이 때는 곧 예수께서 영광 받으실 때이다. 요한복음은 예수 생애의 두 순간에 영광이 결정적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성육신이고(1:14) 다른 하나는 십자가이다. 그 지점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만나 하나를 이룬다.
220102 디지털 네이티브와 함께 가는 교회 (행2:14-21)
[설교요약]어느새 뉴노멀이 노멀이 되었다. 뉴노멀의 생활 방식 가운데는 팬데믹이 끝나고 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 있는가 하면 그 후에도 계속될 것들이 있다. 올드노멀과 뉴노멀 사이에 경쟁이 예상되는 분야도 있다. 교회의 예배가 그중 하나이다. 기성세대에게 비대면 예배는 응급처방일 뿐이었다. 그러나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에게는 온라인 예배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예배중계를 넘어서는 진정한 온라인 예배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2년간 팬데믹의 상항은 메타버스로의 이주를 가속하고 있다. 가상세계가 새로운 선교지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