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창조 이야기에 담겨 있는 두 주제, 곧 “창조세계의 자율성”과 “사람의 특별함”을 배경으로 답을 찾아보자. 창조세계에는 자연법칙이 있어서 모든 것이 스스로 저절로 돌아간다. 그러나 자연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특별함은 스스로 선택한다는 데 있다. 이것이 선악과이다.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오직 사람에게만 선악과를 주시고 선택을 요구하신다. 선택은 자유를 의미하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창조세계에는 네 종류의 힘이 작용한다. ①창조주이신 하나님, ②자유의지를 가진 사람, ③자연법칙, 그리고 ④사탄이다. 이 네 힘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내야 한다.
200927 창세기(13)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창 2:16-3:24)
[설교요약]창세기의 에덴 동산은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과 닮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둘은 초월과 내재가 만나 하나 된 시공간이라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하늘이 인간의 땅으로 내려와 이루어진다. 에덴은 이 땅에 있으나 이 땅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인류 역사의 처음과 끝에 초월과 내재가 만나는 지점이 있고 그 사이에 인류 역사가 있다.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유혹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미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다. 하나님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처럼 될 수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파괴는 사람 사이의 그리고 사람과 자연 사이의 샬롬의 파괴로 나타났다. 새 예루살렘은 에덴의 회복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람의 참여가 요구된다.
200920 창세기(12) 가까이서 돕는 자 (창 2:18-25)
[설교요약]창세기 둘째 단락의 중심 주제는 관계이다. 그 가운데 본문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다룬다. 본문은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이루어지기 전 “사람”에 관해 말한다. “남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23절 이후이다. 따라서 본문은 모든 사람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가까이서 돕는 자”를 만드셨다. 돕는다는 말은 사람 사이의 우열 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말은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다는 것은 하와가 아담에게 종속되었을 말하지 않는다.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이 사람이 땅에 종속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듯이 말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사람이 서로 도움으로 완성된다.
200913 창세기(11) 에덴을 경작하다 (창 2:15)
[설교요약]노동은 인간의 타락에 대한 벌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일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사람과 땅과의 협력을 통해 2장 5-6절의 불모지를 에덴으로 바꾸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에덴을 경작하게 하셨다. 타락 이전 에덴의 노동은 종의 고역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부하는 땅을 억지로 개간하여 길들이는 일이 아니라 땅이 그 생명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창조적 노동, 친환경적 경작이었다. 어미소와 함께 멍에를 멘 새끼소의 일과 같은 것이었다. 에덴의 노동은 놀이와 같았을 것이다. 오늘날 일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일의 규모와 보수가 사람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처럼 오해되고 있다. 그러나 일을 통한 존재의 실현은 일을 통해 완성되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00906 창세기(10) 에덴과 네 개의 강 (창 2:8-14)
[설교요약]에덴으로부터 네 강이 발원했다. 둘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이루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이다. 비손과 기혼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으나, 성경의 정보를 따르자면 구스를 둘러 흐르는 청나일 강과 백나일 강을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 창세기는 인류의 양대 문명을 이루는 젖줄기가 모두 에덴에서 발원하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의 두 강과 뒤의 두 강은 전혀 다른 곳에서 발원하여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서로 만나지도 않는다. 창세기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역사적 사실만이 진실이라는 실증주의의 프레임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에덴의 네 강은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종말의 생명수 강과 닮았다. 창조와 종말은 역사의 양극단이지만 둘다 시간의 초월이라는 점에서 같은 지점이다. 인류 문명사의 위기를 맞이한 지금 에덴으로 돌아가 거기에서 다시 시작하자.
200830 창세기(9) 하나님과 사람과 땅 (창 2:4-7)
[설교요약]창세기의 첫 단락(1:1-2:3)이 온 우주의 창조를 거시적인 규모로 그리는 반면에 둘째 단락(2:4-3:24)은 미시적으로 에덴이라는 한 장소에 거기에 사는 두 사람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첫 단락에서 땅이 지구 표면 전체를 가리키는 반면에 둘째 단락은 흙으로 이루어진 땅, 경작지로서의 땅에 초점을 맞춘다. 땅은 하나님의 도움과 사람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사람은 땅의 흙으로 지어진 존재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신 존재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땅과 사람 사이에서 맺어지는 온전한 관계가 샬롬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인간관계에는 많은 제약을 주지만, 땅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