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은 “찾는” 사람이 적다. 여기에서 찾는다는 말은 추구한다, 찾아 나선다는 뜻이 아니라 발견한다(find)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의 길은 힘들어서 못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찾아내지 못해서 못 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그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 말씀하시며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셨다. 그는 “재산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떠나갔다. 재산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의 재산은 하늘 보화보다 많았다. 그가 하늘 보화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의 문은 넓은 문이다. 그래서 잘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잘 보이지 않는 좁은 문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200322 산상수훈(21) 역지사지 (마 7:12)
[설교요약]
산상수훈의 본론은 “율법과 예언자들”로 수미상관을 이룬다(5:17; 7:12). 이 어구는 율법서와 예언서 곧 구약성서를 의미하며 유대교 전통을 대변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그
유대교 전통을 완성하시며 동시에 뛰어넘으시는 분이시다. 본문은 율법서와 예언서를 황금률로 요약하며 결론을 시작한다. 이것은 보편적인 가르침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동기와 능력에서 거룩한 것이지만 결과로 나타나는 삶의 모습은 지극이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동기와 능력은 하늘에서 오지만 삶의 터전은 이 땅이기 때문이다. 요
즘과 같은 때는 더욱, 가장 시민답게 가장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것 이다.
200315 산상수훈(20) 완전한 관계 (마 7:7-11)
[설교요약]본문에서 7-8절이 논지이고, 9-10절은 논지를 입증하기 위한 예시이며, 11절은 그 예시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에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말은 없으며, “반복해서 간절히” 구하라는 함의도 전혀 들어있지 않다. 본문의 강조점은 “구하여라”가 아니라 “주실 것이다”에 있다. 본문은 산상수훈 윤리의 이상인 완전한 사람이 하나님과 맺는 완전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 관계에서 우리는 “좋은 것”만을 구하며,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모두 “좋은 것”으로 여기신다. 타락 이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맺었던, 바로 그 관계이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는 것은 그 완전한 관계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사귐의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종종 그 완전한 관계를 미리 맛보곤 한다.
200308 산상수훈(19) 성찰 (마 7:1-6)
[설교요약]개역개정판은 “비판하다”, 새번역은 “심판하다”로 번역한 헬라어 “크리노”는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 우리의 사고 작용을 가리키며, 그에 기초하여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거나 남을 비판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서 그 사고 작용은 보는 것으로 그리고 판결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남의 눈에서 티를 빼내 주는 것으로 비유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보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남의 눈을 티를 빼내주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바로 보고 분별하여,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나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코로나 감염증의 불안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분별력을 가로막는 들보, 특히 불안과 두려움과 증오 같은 감정들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200301 산상수훈(18) 먼저 그 나라 (마 6:31-33)
[설교요약]교회는 처음부터 주일에 한 곳에 모여 예배 드리기에 힘써왔다. 힘쓴다는 말은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한 장소에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림으로써 우리의 최선을 다한다. 그것은 또한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주 되심은 언약 관계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언약에 대한 그분의 신실하심을 뜻한다. 언약은 쌍방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주 되심은 우리의 신실한 백성 됨을 요청한다. 우리의 신실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