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0112 산상수훈(11) 신뢰의 기도 (마 6:7-15)

[설교요약]본문은 먼저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잘못된 기도의 사례를 보여준다. 그것은 많은 말을 해야 하나님의 귀에 들려지리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셔서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 관해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의 주 되심의 기도로 바꾸어야 한다. 주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그것은 신뢰에 기반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다. 이러한 신뢰의 관계는 기도의 토대이며 동시에 목표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도의 이상을 시편 131편에 나오는,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젖 뗀 아이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200105 “소통을 잘하는 교회” (엡 4:15-16)

[설교요약]그루터기교회가 꾸준히 성장하며 젊어지고 있다. 새 교우들이 순조롭게 정착할 뿐 아니라 전통이 새물결을 만나 교회가 온고이지신 하고 있다. 그와 함께 젊은 세대와 새 교우들로 리더십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청소년들과 청년의 상상력이 장년의 경험과 어우러져 공동체가 새로워지고 있다. 그 바탕에는 양보와 관용의 문화가 있다. 거기에 새로운 소통 방식이 더해져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 몸의 지체들은 그리스도께 속하여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각 마디를 통해 수평적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다. 몸의 소리를 잘 들어야 건강할 수 있듯이, 소통이 잘 되어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 또 그리할 때 각 지체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다.

191229 산상수훈(10) 숨은 곳을 보시는 하나님 (마 6:1-18)

[설교요약]산상수훈 본론의 첫 단락(5:17-48)이 여섯 가지 율법 조항들을 재해석하여 율법주의자들의 의보다 더 나은 하나님 나라의 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면, 둘째 단락(6:1-18)은 그 의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율법주의자들의 실천과 대조하여 가르쳐준다. 둘째 단락은 유대적 경건의 세 가지 표지인 자선, 기도, 금식을 주제로 율법주의자들의 의가 위선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율법이 사람의 도덕성을 외면적 행위로 판단하고, 그것은 곧 하나의 스펙이 되기 때문에,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도덕과 신앙의 점수를 조작하는 일, 곧 위선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숨은 것을 보시는 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존재의 나무를 가꾸기에 힘쓰자.

191222 산상수훈(9) 존재의 윤리 (마 5:38-48)

[설교요약]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 원수가 된다. 물리적 폭력과 인격적 모욕은 가해자를 원수로 만들고, 법적 다툼과 경제적 손실로 인해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 정치적 억압과 군사적 침략이 지배자를 원수로 만들기도 한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명하신다. 그것은 이 세상을 이웃과 원수로 나누는 이분법을 경계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완전한 사람”은 우리의 행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모델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 모델이시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존재의 윤리이다.

191215 “산상수훈(8) 맹세가 필요없는 사람” (마 5:33-37)

[설교요약]33절의 구약 인용문은 두 개의 명령을 담고 있다. (1)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레 19:12). (2)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님께 지키라(민수기 30:2; 신명기23:21). 첫 사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 맹세하는 것이고, 둘째 사례는 하나님께 직접 서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맥락은 주로 첫 사례와 관련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려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추천서를 자기 손으로 쓰는 것과 같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입술이 아니라 삶으로 말하자. 맹세가 필요없는 진실한 사람이 되자. 하나님의 이름이 말이 아니라 나의 존재에 있게 하자.

191208 산상수훈(7) 서술형 윤리 (마 5:31-32)

[설교요약]고대 유대 사회에서 결혼이란 남자가 여자를 “취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아들에게 딸을 “주는” 것이었다. 결혼을 통해 남편은 아내의 법적 소유자가 되었다. 이혼이란 소유자인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었다. 이혼 사유는 남성의 편의에 따라 이해되었다. 이러한 관습에 대해 예수님은 이혼 사유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대응하셨는데, 그것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진작하고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이혼 당한 사람들 곧 이혼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셨고,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공감의 태도와 유연성은 오늘날 기독교 윤리의 원칙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의 윤리는 단답형이나 사지선다형이 아니라 서술형이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