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일년마다 시계를 처음으로 돌리는 인류의 문화는 새해 첫 날을 새로운 날로 만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새로움은 반복되는 관습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로움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 놓인 우리의 현실에 종말의 하나님 나라가 파고 들어오는 카이로스를 통해 창조된다. 카이로스는 현실에서 경험되는 초월이며 이 땅에서 하늘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반복되는 크로노스의 일상에서 카이로스를 경험하며 일상을 카이로스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새해에는 요한계시록을 함께 읽고자 한다. 계시록은 종말을 말하지만, 종말의 시나리오를 알려주는 것이 계시록의 목표는 아니다. 종말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성도들의 일상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예언의 책으로서의 계시록의 목표이다.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크로노스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181230 예수의 성장 (눅 2:39-40, 51-52)
[설교요약]누가복음은 예수의 성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 예수는 키와 지혜가 함께 자라나셨다. 아기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계속된 배움을 통해 하나님의 끗과 완전한 일치에 이르러 가신 것이다. 열 두 살 성전방문, 세례 받으심, 광야 시험, 변화산, 십자가를 앞두고 감람산에서 드린 기도는 그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예수의 성장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실존과도 통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는 기간을 참고 견뎌야 한다.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이 시간 속에 들어와 시간을 통해 일하신다.
181225 큰 기쁨의 복음 (사 61:1-4; 롬 1:2-4; 눅 2:8-14)
[설교요약]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날 밤 베들레헴 부근의 들판에서 밤에 목자들이 양을 지키고 있었다. 목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갑자기 한 천사가 나타나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빙 둘러 비추었다. 목자들은 두려워하였다.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목자들은 죄인으로 불리며 천대받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조차 그들을 미워하시리라 여겼을 것이다. 예배 공동체로부터 밀려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천사가 그들에게 큰 기쁨의 복음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이자 주님이신 구원자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이다.
181223 기다리는 이 (마 11:2-6) 강윤주 목사
[설교 영상] https://www.dropbox.com/s/ahydvjidbwb1kr0/181223%20%EA%B8%B0%EB%8B%A4%EB%A6%AC%EB%8A%94%20%EC%9D%B4%20-%20%EA%B0%95%EC%9C%A4%EC%A3%BC%20%EB%AA%A9%EC%82%AC.mp4?dl=0
181216 고린도전서(16) 공동체와 자유 (고전 6:12, 10:23)
[설교요약]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는 자유와 방종을 혼종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예상되는 일반적인 반응은 “허용되지 않는 것도 있다”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대응하지 않는다. 바울은 놀랍게도 그들의 과감한 주장을 받아들이며, 거기에 단서를 덧붙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모든 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윤리는 율법이 아니라 자유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는 “이미”와 “이직”의 긴장 속에 있는 불완전한 자유이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할 윤리 규범이 필요하다. 자유란 알아서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며, 그 뜻대로 살려는 의지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실천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유인으로서의 성장은 그 앎과 의지와 실천능력의 성장이다.
181209 고린도전서(15) 부활의 몸 (고전 15:35-58)
[설교요약]플라톤의 영혼불멸설의 영향을 받은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을 향해 바울은 씨앗이 뿌려지고 죽고 다른 형태의 몸으로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도 혼적인 몸(죽을 몸)으로 심고 영적인 몸(죽지 않을 몸)으로 살아난다고 말한다. 혼적인 몸과 영적인 몸을 잇는 것은 영혼이 아니다. 죽음 몸이 죽지 않음을 입는 것이다. 몸과 영혼은 하나이다. 죽을 몸과 죽지 않을 몸을 구별하는 근본적인 차이는 몸의 구성 성분이 아니다. 그것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이 죽음의 운명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따르느냐 아니면 파라오의 질서를 따르느냐의 차이이다. 부활이란 단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 변화 곧 부활은 우리에게 이미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