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80812 새롭게 되라 (엡 4:17-24)

[설교요약]본문은 에베소서의 독자들에게 과거의 삶, 옛 사람의 삶으로 돌아가지 말것을 권면한다. 그들이 전에는 이 세대, 곧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라 살았다. 그들은 왜곡된 자아와 거짓된 욕망을 따라, 곧 파라오의 질서를 따라, 진노의 자식으로 허망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새 사람이 되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 수동태 명령이다. 왜 동작의 주체에게 명령하지 않고 동작의 대상에게 명령할까?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심이 우리의 전적인 내어드림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존재에의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를 내어드림으로 비존재가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이다. 이번 수양회에서 시작된 성숙을 향한 영혼의 여정이, 이러한 내어드림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180805 그리스도의 몸의 성장 (엡 4:1-16)

[설교요약]하나님은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로 부르시고 평화의 띠로 하나가 되게 하시며, 우리가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거기에는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참음이 요청된다. 그리고 사랑으로 서로 용납해야 하는데, 그것은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참고 견디며 품어주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공동체가 함께 성숙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감을 의미한다. 그것이 곧 우리의 믿음과 구원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각자가 그리고 공동체가 신앙의 성숙을 계속해 가는 것이다.

180729 나단의 신탁 (삼하 7:1-17)

[설교요약]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영원히 튼튼하게 세우리라 약속해 주신 나단의 신탁은 양면성이 있다. 비판적인 관점으로 볼 때, 이것은 왕조가 예언자들의 비판을 잠재우고 왕권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근거로 오용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단의 신탁은 ‘하나님의 아들,’ ‘다윗의 씨’가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메시아 대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나단의 신탁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그리고 다윗과 열 두 지파가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단의 신탁만 붙들고 거기에 안주하려 한 왕들의 게으름으로 인해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시기까지 이루어질 수 없었다.

180722 하나님을 두려워함 (삼하 6:12-15)

[설교요약]통합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는 마지막 과정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웃사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임을 당한다. 그 원인을 단순히 율법 조항의 형식적 위반에서 찾기보다 하나님과 다윗에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권과 왕권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 모든 왕들의 지침이 될 역사의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셨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명민한 다윗은 그 메시지를 알아챘다. 오벳에돔의 짐에 임시로 보관했던 언약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며 다윗은 온 힘을 다해 처절하게 춤을 춘다. 그것은 두려움의 춤이었다.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를 천해지기까지 낮추는 춤이었다. 다윗은 재위 중 실수도 많이 저질렀으나 그 때마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 무릎을 꿇고 회개했기에 좋은 왕으로 남을 수 있었다.

180715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 (삼하 5:1-5)

[설교요약]신명기계 역사는 다윗을 왕의 표준으로 제시한다. 그리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 땅에 이루는 왕의 본문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왔을 때 왕은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믿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무엘기하 1-5장에 기록된 통합왕국의 수립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친히 세우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세운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 되심의 언약이다. 그 언약에 의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며 이제 그 언약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다윗이 좋은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시금 다시금 그 언약으로 돌아가 언약을 현재형으로 만들었기 때문다. 우리도 주님과 언약을 세웠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자.

180708 무엇을 듣는지 보아라 (막 4:24-34)

[설교요약]마가복음 4장의 세 비유에서 땅은 청중이고 이 비유들은 청중의 들음을 강조한다. 셋째 단락에 해당하는 4:24-34도 마찬가지이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지 보아라,” “너희가 이해하는 그 이해력으로 너희에게 이해될 것이다. 덤으로 더 깨닫게 될 것이다.”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의 촛점도 땅에 있다. 작은 겨자씨가 어떻게 크게 자라는가? “땅에 심을 때” 그리 된다(31절, 32절).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한다(28절). 그러나 씨앗이기에 열매를 맺는 것이다. 씨앗과 땅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오직 은혜로 사는 것은 파라오의 질서와의 대결을 전제로 한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