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로마황제 칼리귤라와 클라우디우스의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 전역을 다스린 막강한 왕이었다. 게다가 그는 유대인 어머니 미리암의 배경을 입고 유대교인으로 행세하여, 유대인들의 지지까지 받았다. 그가 사도들을 죽인 것은 그러한 유대교적 경건을 시위하려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직접 손 보셨다. 그리고 사도행전 8-12장의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간접적이고 역설적인 방법으로도 역사에 개입하시지만, 이렇게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개입하셔서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보여주기도 하신다. 그러한 하나님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주님의 나라를 이루신다.
160703 베드로의 십자가 제자도
[설교요약]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출해 내셨으나 그를 위해 기도하던 성도들이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는 사도행전 12장의 이야기는, 기도하고도 응답을 믿지 못하는, 믿음없는 성도들의 한 사례가 아니다. 이 사건은 누가복음 22:33과 연결하여 읽어야 한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 주를 위해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가겠다고 장담했으나 좌절하고 말았던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신 것이다. 성도들은 베드로를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드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베드로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 당함을 특권으로 여겼다(행 5:41).
160626 신앙과 관습
[설교요약] 우리가 신앙의 본질이라 여기는 것들 중에 사실은 사람들의 관습에 불과한 것이 많다. 신앙이 관습이 되는 것은 한편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소금이 물에 녹듯 신앙이 우리 삶에 들어와 녹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익숙해지다보면 관습이 신앙을 대체해 버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신약성서 당시, 경직된 정결법은 혐오의 관습을 신앙화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 관습의 울타리를 깨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를 변화시키셨다. 한국교회도 그러한 변화가 필요한 때이지 않을까?
160619 앞서 가시는 하나님
[설교요약] 고넬료 가정의 회심은 최초의 이방인 전도 사건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8장에서 빌립을 통해 이미 시작된 이방인 구원 사역을 위해, 9장에서 사울을 준비시키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제 사도 베드로(10장)와 예루살렘 교회(11장)를 어떻게 변화시키시고 준비시키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구원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들에서 오직 성령에 이끌렸다. 우리도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두고, 오직 성령에 이끌리는 교회가 되자.
160612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설교요약] 파라오의 질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협하고 유혹하고 박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그 일들마저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신다. 산헤드린의 박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하나님은 그 흩어짐을 사도행전 1:8을 실현하는 도구로 삼으셨다.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논박하기 위해 복음을 공부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전도자 바울을 만드셨다. 그러한 반전의 정점에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는 악의 극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다. 우리의 현실에서 파라오의 질서는 너무 강하다. 그래서 역사는 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눈을 들어 크게 보면,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심으로, 역사 속에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어 가신다.
160605 신앙과 마술
[설교요약] 마술이란,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영을 조종하는 기술이다. 시몬은 사마리아 성에서 인정받는 마술사였다. 그는 스스로 위대한 자라 말하고 다녔고, 사람들은 그의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 믿었다. 시몬은 빌립을 자신보다 더 뛰어난 마술사로 인식하여 그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는, 그들이 영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돈을 주고 그 능력을 사려 하였다. 그는 믿기 전에 마술사였으나, 믿은 후에도 마술을 버리지 못했고, 결국 마술사로 이야기를 마치게 된다. 그러나 성령은 마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은 사람에 의해 조종되시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충만이란 성령에 온전히 이끌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