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51018 사무엘상(8) 순종과 위계질서

[사무엘상 15:22] 우리가 순종을 말할 때, 그것은 대개 어떤 위계질서와 관련된다. 위계질서에서 아랫사람에게 순종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는 유교식 위계질서가 그대로 들어와 있으며, 그것은 종종 성경으로 정당화된다. 성경 안에도 위계질서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적인 것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계시의 도구로 사용된 것일 뿐, 그 자체가 계시는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순종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바로 세움으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올바른 관계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

151011 사무엘상(7) 주인의 순종

[사무엘상 15:20-22] 헤렘은 적의 성읍과 전리품을 모두 진멸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전쟁이다. 그래서 헤렘은 ‘진멸’을 뜻하며 동시에 ‘바친 물건’을 뜻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아말렉과의 전쟁(헤렘)에서 사울은 하나님께 바쳐야 할 전리품(헤렘)을 가로채고, 그것을 제사 드리기 위함이라 항변하지만, 그것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헤렘 자체가 하나의 거룩한 제사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 전쟁을 주체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움직였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국가 지도자로서 무능을 드러냈다. 오늘날 헤렘은 일상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롬 12:1)로 대체된다. 다른 사람의 몸이 아니라 내 몸을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은 영적 전쟁이기도 하다. 그 일상의 예배에 주체가 되자.

151004 사무엘상(6) 되살려 낸 도움의 돌

[사무엘기상 7:12-14] 사무엘기상 4장과 7장에는 블레셋과의 전쟁 이야기가 담겨 있다. 두 싸움은 매우 대조적이다. 4장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고 전쟁에 나갔다. 하나님을 움직여 자기 편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결과는 대패였다. 그러나 7장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움직이려 하지 않고, 미스바에서 회개하여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그 결과 그들은 싸우지도 않고 이겼다. 재미있게도 두 싸움은 모두 에벤에셀과 연결된다. 4장의 에벤에셀에도 어떤 감동적인 감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감사는 빛바래고 화석화 되어 버렸다. 사무엘이 세운 에벤에셀은 그 도움의 돌을 되살려낸 것이다. 나의 욕망에 따라 하나님을 움직이고자 할 때, 그 결과는 원망과 불평뿐이다. 그러나 나를 변화시킬 때,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고, 나는 감사밖에 할 것이 없다.

150927 사무엘상(5) 하나님은 왜 사울을 버렸을까?

[사무엘기상 13:7후-14] 하나님은 왜 사울을 버리셨을까? 사울이 직접 제사를 드림으로 제사장 사무엘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정교분리식 해석은 적절하지 않다. 사울이 제사를 집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참조 삼하 6:17; 왕상3:2, 3-4). 그럼 사울이 뭘 잘못한 걸까? 하나님이 그에게 너무 가혹하셨던 것은 아닌가?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이후 모든 왕들의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더 엄격하실 수밖에 없었다. 왕의 핵심적인 임무는 하나님과 소통하여 그분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온 나라에 실현하여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사무엘이 대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울은 더 성숙하여 그 역할까지 이어받을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책임에 소극적이었다. 그는 마치 어른이 되지 못한 아들과 같아 ‘아버지’ 사무엘에게 의존적이었고, 심지어 사무엘이 죽은 후에도 그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 사울은 버림 받은 것이 아니라, 왕의 후보로서 훈련 과정에서 탈락한 것이다.

150920 사무엘상(4) 다른 꿈을 꾼 사람들

[사무엘기상 8:10-18] 사사 제도와 왕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제도를 유형론적으로 비교해 볼 때, 양자의 본질적인 차이는 권력과 정통성의 출처에 있다. 사사의 영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사람들은 사사라고 해서 다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사가 하나님과 소통할 때에만 그리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소통이 상실되면 사사 제도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그러나 왕의 권력과 정통성은 왕정제도 자체 내에 있다. 왕의 아들이기 때문에 왕이 되고, 왕이 가진 물질적 강제력이 곧 그의 권력의 토대가 된다. 그래서 왕정은 하나님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솔로몬을 찾아 나온 장로들은 왕정을 세워 자신들의 권력을 영구화하고 하나님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와 같은 계급사회로 만들고자 했다. 이스라엘 왕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역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었다.

150913 사무엘상(3) 하나님의 백성다운 나라

[사무엘기상 8:1-9]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나아와 ‘이방 나라들처럼’ 그들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그것은 사무엘의 지도력에 대한 거부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주 되심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사시대에 계속되어 온 거역의 패턴, 즉 하나님을 떠나 이방나라들처럼 다른 신을 섬기던 경향성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향성이 사사 시대에는 (가나안의 지역신이자 농업의 신인) 바알 숭배로 나타났고, 이번에는 왕에 대한 요구로 나타났다면, 왕정 시대에는 동일한 경향성이 강대국에 대한 숭배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실수를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 하나님의 주 되심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생을 통해 끊임없는 내어드림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간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