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성 목사

210725 요한복음(9) 하나님 나라 잔치 (요 2:1-11)

[설교요약]본문은 요한복음에 담긴 많은 표징들 가운데 첫 사건을 보도한다. 유대인들에 관습에 비추어 볼 때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예수께서 거기에 개입하셔서 신랑의 명예를 지켜주시고 자기 영광을 드러내셨다. 포도주는 없고 차가운 돌항아리만 놓여 있는 그 공간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잊어버리고 차가운 선긋기에 여념이 없던 그 시대 유대교와 오늘의 한국교회를 떠올리게 한다. 손님이셨던 예수님은 그 잔치의 주인이 되셔서 친히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신다.

210718 요한복음(8) 예수를 보라 (요1:29-51)

[설교요약]본문에서 세 단락으로 증언의 사이클이 이어진다. 요한이 예수를 증언하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고, 다시 제자들이 그 역할을 이어받아 예수를 증언한다. 본문에는 본다는 말이 매우 자주 나온다. 시각적 인지를 가리키는 일곱 가지 동사가 23절에 무려 24회 사용되었다. 요한은 오직 예수를 가리키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행복했던 이유는 그가 예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예수는 십자가를 통해 영광을 보여주신 분이시다. 봄은 경험을 통한 앎을 상징한다. 요한과 제자들이 예수를 보았을 뿐 아니라 예수도 그들을 보셨다. 우리가 예수를 보는 것은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와 눈을 맞추는 것이다. 요한복음을 읽는 가운데 그 친밀한 사귐이 더 깊어지길!

210711 요한복음(7) 나는 소리요 (요 1:6-8, 15, 19-34)

[설교요약]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예언자 곧 모세와 같은 예언자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 셋은 종말에 올 구원자의 표상이다. 사람들이 요한을 그렇게 짐작한 이유는 그의 대중적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럼 누구일까? 요한은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음성이라고 말한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음성 기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요한이 하나의 기표로서 에수를 가리키는 행위가 곧 “증언”이다. 요한은 빛을 증언하는 자이다. 그것은 달이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대개 사람들이 알아줄 때 존재감을 느낀다. 그러나 요한은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그의 존재와 사명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보름달과 같이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다.

210704 요한복음(6)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 21:24-25)

[설교요약]사실의 개념은 시대에 따르게 변화되어 왔다. 주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로토스 이전까지 사람들은 사실과 신화를 구별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의 사실에는 신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신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 시대 로마의 전기작가들은 주인공의 인물 됨을 잘 드러내기 위해 사실을 각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전기인 복음서의 저자들은 그 책에 예수에 관한 사실을 담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을 오늘날의 실증주의적 사실 개념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된다. 복음서가 예수를 구원자로 서술하는 과정에서 예수 시대와 복음서 시대의 지평 융합이 일어났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여 서술한다.

210627 요한복음(5)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요 1:14-18)

[설교요약] 요한복음 1장 14절의 배경에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장면들이 있다. “사셨다”로 번역된 스케노오는 하나님의 임재(쉐키나)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현현은 구름 속에 비치는 영광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스로를 “은혜와 진리가 풍성하신 분”으로 계시하셨다. 구약의 하나님의 구름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처럼, 신약의 하나님은 예수의 육신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사람이신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높으신 하나님이 낮은 곳에서 계시되며, 초월자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통해 보여진다. 그 예수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복음서를 주의깊게 읽으라.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