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장 13-16절]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면 하나님은 아브람의 자손이 이집트의 나그네가 되고 종이 되어 사백 년간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라 예고하신다. 언약에 따른 축복이 기대되는 지점에 너무 당황스러운 말씀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가나안 부족들의 타락을 내다보시고 적절한 시점에 아브람을 부르시며 그의 자손을 큰 민족으로 만드시되 비옥한 이집트 땅을 못자리로 삼고자 하신 것이다. 그리고 사백 년 후에 모내기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삶에는 풍요와 고난이 함께 있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그들의 삶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향한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셨다.
210502 창세기(39) 언약의 땅 (창15:7-21)
[설교요약]요나의 이야기에서 요나는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에 한정된다고 믿는 배타적 민족주의자들을 대표한다. 유대인들의 그러한 배타성은 언약 백성 됨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그와 비슷한 현상이 언약의 땅에 대해서도 일어났다. 언약의 땅은 언약 백성의 사명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빛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옛 가나안 부족들의 죄악이 넘쳐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시고 이스라엘을 심으셨다. 창세기 15장은 사백년 전에 그 일을 예고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점령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그 땅을 더럽힐 때 그들도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다(레위기 18:24-30; 신명기 4:25-27).
210425 창세기(38) 신실하신 하나님 (창 15)
[설교요약]창세기 15장의 언약 장면은 아브람의 이야기 전체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언약을 제안하시고, 아브람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고향 땅을 떠나 주님을 향한 신실함을 지켜왔다. 하나님은 그 신실함(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15:6). 그리고 하나님은 15장의 언약에서 아브람을 향한 신실함을 지키실 것을 다시 확인해 주신다. 주님은 그에게 자손과 땅을 다시 약속하시며,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를 홀로 지나가시는 언약 행위를 통해 그분의 신실함을 확인해 주신다. 아브람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 신실함을 지켰다.
210418 창세기(37) 신앙의 의미와 사실 (창 2:8-14)
[설교요약]사실은 중요하다. 우리의 삶과 대화가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bare fact” 곧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모든 사실에는 의미의 옷이 덧붙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실을 의미와 함께 파악하고, 의미를 담아 전달한다. 그것은 고대인과 현대인이 마찬가지이다. 차이가 있다면 옛날 사람들은 의미의 옷이 더 두꺼웠을 뿐이다. 그러므로 현대 실증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사실성의 기준을 성경에 적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성경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사실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였다.
210404 창세기(36)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하나님 (창 15장 1-6절, 롬 4장 17-25절)
[설교 요약]
로마서 4장 18-25에서 사도바울은 창세기 15:1-6의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례로 제시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음을 직시하면서도 의심하지 않고 믿음이 더 굳세어진 것이다. 로마서에서 죽음은 죄의 지배와 직결되어 있다.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지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게 한다. 그 뿐 아니라 죄는 죄를 짓는 사람을 지배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죄책감에 짓눌리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되 죄책감으로 우리를 지배하려 하는 죄의 권세에 우리를 내어주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에서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은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