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사람들은 대개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악의 이분법을 동원한다. 상대방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폭력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계시록의 종말 심판 환상에는 선악의 이분법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계시록은 절대 악에 대한 심판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폭력적으로 그리지 않기 위해 애쓴다. 바벨론을 심판하는 세 개의 화에는 사탄의 세력이 심판자로 등정하여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는 경험적 진리를 확증한다. 역사의 종말에 사탄의 세력이 소멸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싸우지 않고 이기신다.” 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다. 죽임 당함으로 이기는 것이 계시록이 그리는 싸움의 정석이다.
190818 요한계시록(24) 그 도시를 떠나라 (계 18장)
[설교요약]계시록 18장은 바벨론의 멸망을 주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서술하고 또 해설해준다. 바벨론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음행과 사치와 성도들에 대한 박해이다. 본문에는 특히 바벨론의 멸망에 반응하는 세 그룹의 사람들 곧 땅의 왕들과 땅의 상인들과 선원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관심은 한결같이 현실적 이익에 묶여 있다.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고도 그들은 “내 돈, 내 돈!” 하며 부르짖을 뿐이다.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그 도시를 떠나라고 촉구한다(18:4). 이것은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만을 경배하라는 삽입부의 권면(14:7)을 비유적으로 다시 표현한 것이다. 그러한 촉구와 함께 본문은 바벨론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190804 요한계시록(23) 오늘의 바벨론 (계 17장)
[설교요약]계시록이 말하는 바벨론은 로마 제국이다. 그러나 동시에 바벨론은 로마 제국보다 많은 것을 포함한다. 로마 제국은 파라오의 질서가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취해 온 다양한 현실적 양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계시록의 궁극적인 관심은 바벨론의 배후에서 바벨론을 움직이고 있던 파라오의 질서에 있다. 계시록은 “짐승”을 통해 그것을 보여준다. 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은 로마의 황제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다. 그러나 17장에서는 일곱 명의 황제를 포함하는 집단적인 실체로 비유된다. 짐승과 바벨론은 운명공동체인 듯 하나, 17:16에서 짐승은 바벨론을 무너뜨리며, 바벨론이 멸망한 후에도 짐승은 살아있다. 바벨론은 짐승이 바꿔 입은 옷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짐승은 오늘날 새로운 바벨론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파라오의 질서를 식별하자.
190707 요한계시록(21) 하나님의 의 (계 15장)
[설교요약]계시록 15-16장은 일곱 대접 재앙을 서술하는데, 이를 전후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집중적으로 언급된다(11:18; 14:10, 19; 15:1, 7; 16:1, 19). 하나님이 오늘의 고난의 현실에 결코 무심하지 않으시며, 가슴에 분노를 품고 계시다가, 종말에 박해자들에게 그 진노를 쏟으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동을 너무 인간적인 방식으로 서술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진노는 언약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언약의 어휘들 가운데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15장에서 처음 언급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참되심)이 그와 연결된다. “원한을 풀어준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190630 요한계시록(20) 다른 가치 (계 14장)
[설교요약]계시록 14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5절은 하늘 합창 장면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6-13절은 세 천사의 메시지와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으로서, 삽입부(10-14) 전체를 대변하는 권면을 담고 있다. 로마황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라. 바벨론은 무너질 것이며, 짐승에게 경배하던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기까지 고난의 기간이 잠시 더 이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14-20절은 삽입부를 중심줄거리와 연결해 주는 기능을 한다. 계시록의 성도들은 세상과 다른 가치를 따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황제숭배로부터 오는 유익을 거절하고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따름으로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이었다. 로마제국은 그들을 정죄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이 결백하다고 선언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