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요한계시록 13장은 삽입부에 속해 있다. 삽입부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요한과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현실을 해석해준다. 따라서 열 뿔 가진 짐승과 “666”이 무엇인지도 먼저 주후 1세기의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 계시록 13장은 로마제국이 자행하고 있던 황제숭배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조합활동에 포함된 황제숭배를 거부함으로 인해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는데, 계시록은 그것을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만 거래할 수 있는 것으로 상징적으로 서술한다. 666은 사람의 이름이 타나내는 숫자, 곧 게마트리아이다. 이것은 사탄의 소유권 표시이다. 이 상징적인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도 이미와 아직 사이 삼년 반의 기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파라오의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주님으로 분명히 고백하고 실천하는 진정한 믿음이 요청된다.
190616 요한계시록(18) 삼년 반 (계 12장)
[설교요약]계시록은 삽입부는 일곱 메시지와 동일한 현실 곧 요한과 일곱 교회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서술하여 그 영적 실체를 보여준다. 삽입부의 전반부(10-11장)가 교회의 증언에 촛점을 맞추는 반면에, 후반부, 특히 12-13장은 짐승과 그 추종자들의 실체를 폭로한다. 계시록 12장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그로 인해 사탄은 하늘에서 쫓겨났고, 이미 결정된 최후가 오기까지 시한부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탄의 궁극적인 종말이 오기까지 성도들은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본받아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 사탄과 싸워 이긴다. “이미”와 “아직”의 긴장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기간을 계시록은 “삼년 반”이라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서술한다.
190609 요한계시록(17) 참된 예배 (계 11:15-19) 안용성 목사
[설교요약]계시록은 세 개의 두루마리로 대변된다. 첫 두루마리(1:11)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일곱 인으로 봉한 큰 두루마리(5:1)는 중심 줄거리를 대변하고, 작은 두루마리(10:2)는 삽입부를 대변한다. 삽입부에서 수미상관을 이루는 10장과 14장은 삽입부를 중심 줄거리와 연결하며 삽입부의 내용이 요한과 성도들의 현실에 관한 것임을 알려준다. 성도들의 현실은 삼년 반으로 상징되는 고난과 보호의 기간이다. 그 기간 동안 성도들은 로마 제국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예배한다. 예배란 하나님께 적합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190602 요한계시록(16) 신실한 증인 (계 10:1-11:13)
[설교요약]계시록 8장 13절은 이야기 속의 미로에서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요한이 제공한 약도이다. 그 약도를 참조하여 9:12와 11:14에 제시된 이정표에 따라 중심 줄거리의 흐름을 파악하고 나면 삽입부가 드러난다(10:1-11:13; 12-14장). 삽입부는 요한과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처한 현실을 해석해 주며 성도들을 격려한다. 요한의 재 소명(10장)에이어 계시록 11장은 두 증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증인은 요한과 모든 성도들을 상징한다. 증인이란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사람이다. 증인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떤 사안의 진위가 다투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로마 황제가 주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가 하는 사안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예수의 주 되심을 삶으로 증언할 증인들을 요청한다.
190526 요한계시록(15) 땅에 거하는 자들 (계 9장)
[설교요약]요한계시록에는 구원의 이야기와 심판의 이야기가 두 가닥으로 함께 짜여서 흘러간다. 두 이야기에는 각각 그 이야기를 대변하는 등장인물들이 있다. 그 중 심판의 이야기에서는 “땅에 거하는 자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향한 세 개의 화 가운데 두 개에 해당하는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 재앙은 사탄을 따르는 무리들에 의해 수행된다. 그러나 땅에 거하는 자들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우상숭배를 계속한다. 종말 심판이 시작된 후에는 더 이상 회개가 없다. 오늘 우리는 “이미”와 “아직”이 공존하는 중간 시대, 하나님 나라와 파라오의 질서의 중간 지대를 살아간다. 그러나 계시록의 종말 심판에는 중간 지대가 없다. 오늘 우리의 삶이 그 날 우리가 어느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될 지를 결정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