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성 목사

181225 큰 기쁨의 복음 (사 61:1-4; 롬 1:2-4; 눅 2:8-14)

[설교요약]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날 밤 베들레헴 부근의 들판에서 밤에 목자들이 양을 지키고 있었다. 목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갑자기 한 천사가 나타나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빙 둘러 비추었다. 목자들은 두려워하였다.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목자들은 죄인으로 불리며 천대받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조차 그들을 미워하시리라 여겼을 것이다. 예배 공동체로부터 밀려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천사가 그들에게 큰 기쁨의 복음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이자 주님이신 구원자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이다.

181216 고린도전서(16) 공동체와 자유 (고전 6:12, 10:23)

[설교요약]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는 자유와 방종을 혼종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예상되는 일반적인 반응은 “허용되지 않는 것도 있다”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대응하지 않는다. 바울은 놀랍게도 그들의 과감한 주장을 받아들이며, 거기에 단서를 덧붙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모든 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윤리는 율법이 아니라 자유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는 “이미”와 “이직”의 긴장 속에 있는 불완전한 자유이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할 윤리 규범이 필요하다. 자유란 알아서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며, 그 뜻대로 살려는 의지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실천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유인으로서의 성장은 그 앎과 의지와 실천능력의 성장이다.

181209 고린도전서(15) 부활의 몸 (고전 15:35-58)

[설교요약]플라톤의 영혼불멸설의 영향을 받은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을 향해 바울은 씨앗이 뿌려지고 죽고 다른 형태의 몸으로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도 혼적인 몸(죽을 몸)으로 심고 영적인 몸(죽지 않을 몸)으로 살아난다고 말한다. 혼적인 몸과 영적인 몸을 잇는 것은 영혼이 아니다. 죽음 몸이 죽지 않음을 입는 것이다. 몸과 영혼은 하나이다. 죽을 몸과 죽지 않을 몸을 구별하는 근본적인 차이는 몸의 구성 성분이 아니다. 그것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이 죽음의 운명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따르느냐 아니면 파라오의 질서를 따르느냐의 차이이다. 부활이란 단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 변화 곧 부활은 우리에게 이미 시작되었다.

181202 고린도전서(14) 부활의 시작 (고전 15:20-26)

[설교요약]예수는 메시아이실 뿐 아니라, 고난받는 종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신 인자이기도 하다. 예수를 따르던 자들이 예수가 바로 그분이심을 알아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부활이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이 다니엘서가 예고하는 종말의 부활의 시작, 곧 부활의 첫 열매임을 깨달았다. 예수와 함께 종말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다. 교회는 종말의 시작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종말의 완성과 함께 끝난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종말신앙이다. 그것은 종말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종말을 사는 것이다. 그 종말은 죽음의 종말이다. 부활은 단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남으로 그치지 않는다. 부활은 곧 죽음의 멸망이다. 종말을 사는 것은 부활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181125 고린도전서(13) 사랑은 영원합니다 (고전 13:8-10; 엡 4:11-12)

[설교요약]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그리고 그 어떤 은사도 한시적이다. 천국에는 더 이상의 가르침이나 권면도 섬김이나 나눔이나 자선도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결핍이 없기 때문이다. 결핍이 없다면 사랑도 필요없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다. 결핍에서 시작되어 그것을 채워줄 대상을 향하는 것이 에로스의 사랑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이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의 문제임을 바로 보았다. 인간의 소외를 해결하는 길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프롬의 사랑 역시 결핍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타락으로 결핍이 시작되기 전부터 존재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서로 이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천국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그 사랑을 이 땅에 선취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