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땅은 청중, 곧 듣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실 때 청중은 땅에서 듣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네 종류의 땅에 관해 말씀하신다. 씨, 곧 말씀이 네 종류의 땅에 뿌려졌다. 네 땅을 가르는 기준은 들음이다. 길가는 듣지 않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돌짝밭은 듣고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고자 하나 파라오의 질서의 박해에 무릎 꿇은 사람들이다. 가시덤불은 파라오의 질서의 당근에 넘어가 감히 그것을 거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잘 듣는 것은 설교를 듣고 무조건 아멘 하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아멘 하는 사람은 이단에도 쉽게 넘어간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러니 위해서는 성경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신천지 같은 이단에 넘어가는 이유는 말씀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180610 주님은 아십니다 (시 139)
[설교요약] 시 139편의 시인은 억울한 일을 당하여 하나님께 호소한다. “주님이 나를 아시지요?” 주님은 내 입에서 단어가 발음되기도 전에 내 생각을 온전히 아신다(4절). 그것은 주님이 나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13-16절).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찾아야 할 그 순간에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리곤 한다(7-12절).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 수준에 맞게 그려놓은 하나님 그림을 하나님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과 어리석은 협상을 벌이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라.
180603 보물을 담은 질그릇 (고후 4:7-12)
[설교요약]바울은 스스로의 처지를 보물을 담은 질그릇에 비유한다. 그 보물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아는 지식의 빛을 가리킨다. 그것은 존재와 세계를 여는 창조의 빛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 복음은 구원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보물을 품은 바울의 처지는 질그릇과 같다. 그것은 전도자로서 그의 고난의 삶으로 인한 것이며, 특히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적대자들로 인한 것이다. 그의 처지는 사방으로 압착 당해서 부서질 위기에 있는 질그릇과 같으며, 바닥에 내던져져서 깨어질 위기에 있는 질그릇과 같다. 그러나 그 약함에는 뜻이 있다. 그것은 능력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위함이다.
180527 사자와 리워야단 (시 104)
[설교요약]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 말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세계의 주인이시라는 뜻이며 온 피조세계가 그의 통치 아래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피조세계에는 낮이 있는가 하면 밤도 있으며, 질서를 갖춘 땅이 있는가 하면 혼돈의 바다도 있고, 순한 동물들이 있는가 하면 사자와 같은 맹수와 리워야단과 같은 바다의 괴물도 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일부로서 주님의 통치 질서 아래에 있다. 이것이 시편 104편이 노래하는 하나님의 피조세계이다.
180520 청년, 희망 (사 40:27-31)
[설교요약]청년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의 문제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선택해 온 경제 발전 모델은 높은 실업률로 귀결되었으며, 소비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양극화와 이기주의가 심화된 가운데 청년들이 그 사회와 문화속에서 태어나 자라왔다. 그러나 청년의 절망은 지나치다. 살 길은 있다. 단, 함께 살아야 모두 살 수 있다. 기성세대의 잘못도 있지만 그들이 이룬 전무후무한 공헌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다만 기성세대의 상상력은 여기까지다. 이제 청년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와 사회를 알아야 한다. 참여해서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 스스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사야서 40장은 청년이 좌절한 그 자리에서 희망을 보여준다. 하나님으로부터 희망을 찾으라. 그리하여 청년이 희망이 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