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성 목사

170827 로마서(2) 하나님의 의 (롬 1:16-17)

[설교요약]로마서는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 고린도에 3개월간 머물러 있는 동안 저술하였다. 로마서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의’이며, ‘이신칭의’는 그에 부속된 개념이다. ‘의’란 언약관계에서 규정되는 개념으로서, 쌍방은 언약에 신실할 때 의롭게 된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 백성과의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신실함을 요구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게 하는 신실함이다. 그 신실함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다. 의인은 그 신실함으로 살 것이다. 여기서 ‘산다’는 말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일 뿐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170820 “로마서(1) 하나님 나라의 복음” (롬 1:1-7)

[설교요약] 로마서의 서두(1:1-7)에서 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가운데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정의한다. 그의 복음은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2절). 이 복음은 예수에 관한 것인데(3전절), 그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아들(메시아)이며(3후절), 성령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4절에는 복음의 풀 스토리가 담겨있다. 복음이란 단지 예수께서 ①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복음이란 ②그가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셔서 ③우리의 주님이 되셨다는 소식이다. 이 예수의 주 되심에 대해 순종으로 응답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5절). 이 복음을 담아, 편지의 초두에서, 바울은 자신을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소개한다(1절).

170813 하나님 나라의 지혜 (고전 1:18 – 2:8)

[설교요약] 하나님의 지혜란 십자가의 말씀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임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 그리고 십자가의 지혜를 가진 공동체는 건강하다. 그러나 멸망할 자들, 즉 이 세대(의 통치자들)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한 그들의 지혜는 더 이상 지혜가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 앞에 그것은 더 이상 지혜가 아닌 것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판명이 났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십자가의 지혜의 증거로 제시한다.

170806 평화의 지혜

[설교요약] 하늘에서 오는 선한 지혜가 있는가 하면, 땅에 속한 악한 지혜도 있다. 어떤 지혜인지는 그 열매를 통해 드러난다. 땅에 속한 파라오의 지혜는 시기심과 경쟁심으로부터 와서 다툼을 부축이며 혼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하늘의 지혜는 온유하고 평화의 씨를 뿌려 의의 열매를 거둔다. 평화의 지혜는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살게 한다. 그러나 파라오의 질서는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파라오의 질서는 각 사람의 욕망을 부추켜 파괴적인 경쟁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다. 파라오의 지혜에는 자족의 능력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지혜를 통해 세워진다.

170730 Lady Wisdom

[설교요약] 잠언 31:10-31은 지혜를 의인화 한 Lady Wisdom의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이해된다. 지혜는 잠언 1, 3, 4, 7, 8, 9장 등에 의인화 되어 나타나는데, 특히 9:1-6은 지혜를 한 여인의 모습으로 그리며, 나아가 8장은 지혜를 인간을 넘어서는 신적 존재로 묘사한다. 그러한 전통은 지혜서와 집회서를 포함한 제2성전기 여러 지혜문학들을 통해 발전되고, 요한복음 1장에서 육신이 된 말씀(로고스)을 묘사하는 개념적 지평이 된다. 이러한 지혜 전통은 아버지의 이미지를 통해 남성화 된 하나님 상을 여성적 이미지로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되며, 예수님은 말씀과 사역을 통해 이를 완성하어 온전한 하나님 상을 제시하셨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오히려 이로부터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