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성 목사

160522 하나님을 가둘 수 없다

[설교요약] 스데반은, 그가 성전과 율법을 모독했다는 고소에 대한 변론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건물에 거하시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를 고소한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았다고 반박한다. 그들은 고대의 종교관념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성전이라는 공간에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민족에 가두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둘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 안에서도 일하시지만 그보다 더욱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일하신다. 배움이라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사람, 생각이 열려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자가 될 수 있다.

160508 나의 기쁨이 네 안에

[설교요약] 금년 가정의 달에 드리는 예배들은 공동체의 각 구성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시간으로 삼고자 한다. 약한 지체들을 돌아보아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존재는 늙어가며 쇠약해지고, 사회적 존재는 은퇴와 함께 사그라든다. 그 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진정한 나의 존재만 남는다. 그 존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이름은 ‘헵시바’이다. 그 이름의 뜻은 이것이다. “나의 기쁨이 네 안에 있다!”

160501 받아들이는 자가

[설교요약]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기에 들어간다. 왜 그럴까? 말씀 안에 답이 있다.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너무 쉽지 않은가? 그렇지는 않은 것같다. 예수님은, 본문에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움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23-25절).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기가 ‘어린이’에게는 쉬우나 ‘부자’에게는 어렵다. 신앙은 성숙은 우리 인격에서 하나님의 주 되심이 성숙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어린이와 같이 되어가는 것이다.

160424 사람을 살리는 종교

[설교요약] 스데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은 리버디노 회당의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로마군에 포로로 잡혀가 노예가 되었다가 해방된 사람들(freedmen)로서, 애굽의 노예살이와 바벨론 포로생활을 겪었던 그들의 조상의 고난을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더 자기 나라와 자신들의 종교를 사랑했지만, 그로 인해 생각이 경직되어 근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기독교는 사람을 살리는 종교이다. 그러나 생각이 경직될 때 기독교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종교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역사는 가르쳐 준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생각이 유연해야 한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21:1-4

제목:   부활: 죽음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