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21016 사무엘하(7) 다윗 왕국의 확장

[설교요약]
이스라엘의 영토는 대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로 지칭된다. 그러나 다윗 왕 때“하맛 어귀로부터 에시온 게벨까지” 영토가 확장되었다. 다윗 왕국의 확장 과정은 8장에
요약되어 있고, 그 중 시리아 정복 과정이 10장과 12장에 상세히 서술된다. 이 전쟁은 다윗이 시작한 것이 아니다. 암몬과 평화 공존을 의도한 다윗의 조문 사절단을 암몬이 모
욕하여 돌려보내고 시리아 제국에 속한 나라들에 지원군을 요청함으로 암몬-시리아 연합군과 다윗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사무엘기는 다윗 왕국의 확장을 나단의 신탁에서 주
신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주변 국가들로부터 보호하여 평화롭게 살게 하셨고, 다윗은 이웃 나라들과 공존하고자 했다. 그리 함으로 다윗
은 자신의 영토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했다.

220821 사무엘기하(1) 왕의 길

[설교요약]사무엘하는 이스라엘 왕 다윗의 이야기이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로 이어지는 역사서를 히브리어 성서는 전기예언서로 분류하는데, 전기예언서는 이스라엘의 왕들을 다윗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사무엘하는 다윗이 어떤 점에서 이스라엘 왕의 표준이 되는지는 알려준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고 실천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완벽한 기회에서 물러선 것 그리고 사울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의 그러한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다윗은 “왕”이라는 이름에 속지 않았다. 이름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

220731 내 마음을 알아다오!

[설교요약]호세아는 “사랑의 예언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나 그보다는 “실연 당한 예언자”가 더 잘 어울린다.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반복되는 배신을 경험하는 행위 예언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다. 그러나 그 행위 예언은 선포에 앞서 호세아 자신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호세아서를 대표하는 이 말씀은 사실 “내 마음을 알아다오!’ 하는 하나님의 호소이다.

220710 예언자의 소명

[설교요약]아모스는 최초의 문서 예언자이다.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북왕국 이스라엘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왕의 뜻대로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 있었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남왕국의 한 시골 마을 드고아의 농부였던 아모스를 부르셔서 북왕국 이스라엘로 보내 공의와 정의를 회복할 것을 촉구하게 하셨다. 아모스는 거역을 반복해온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다시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궁극적인 심판의 경고이자 동시에 새로운 만남과 회복에의 초대이기도 하다.

220612 요한복음(47) 두 제자

[설교요약]
요한복음의 본 이야기는 20장으로 마무리되며, 21장은 에필로그이다. 21:24-25를 토대로 생각해 볼 때, 20장까지의 저술을 책임진 사람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곧 사도 요한이며, 21장을 더한 사람은 요한의 제자이다. 에필로그의 주제는 제자도이다. 초대교회의 두 지도적 인물이었던 베드로와 요한이 부각되며, 둘 중에서도 베드로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 사도 요한의 제자가 에필로그를 더했는데, 그 대부분의 내용을 자기 스승 요한이 아니라 베드로의 이야기로 채웠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누구신지 보여주며 동시에 진정한 제자 됨에 관해서도 가르쳐준다.

220306 요한복음(35) 왕을 어떻게 맞이할까? (요한12:12-19)

[설교요약]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일, 그리고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은 요한복음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로마 제국을 위해 예수를 제거하려 했다. 반면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호하는 무리는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신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을 그침으로, 죽임이 아니라 죽음으로 그의 나라를 세우시며, 그 나라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용한다. 이 세상 나라와 다른 그 나라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를 맞이하는 모범을 마리아가 잘 보여준다.

220220 죽음을 대면하심 (요한11:32-38)

[설교요약]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은 그냥 많은 치유 사건 가운데 하나로 서술하지 않는다. 이것은 예수를 죽음으로 이끈 사건이며, 동시에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그래서 예수는 나사로의 죽음을 단순한 생물학적 죽음으로 대하시지 않고, 더 근본적인 죽음의 현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인간을 지배하는 사탄의 지배에 대면하신다. 그래서 이 죽음에 분노하신다. 그리고 마리아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신다. 우리는 모두 죽지만 주님 오시는 날 함께 부활할 것이다. 우리는 죽음에 삼키우지 않는다. 육체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통로에 불과하다.

220213 죽음과 영광 (요한11:1-8)

[설교요약]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이 예수의 죽음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제국의 관리가 되길 원하던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로마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고, “한 사람을 제거”하는 정치적 해결을 선택했다. 죽은 사람을 살려냄으로 이 땅에서 예수의 영광이 절정에 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를 십자가로 내 몰았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예수의 죽음을 영광의 사건으로 서술한다. 사람이 되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예수의 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히 빛나듯(1:14), 예수의 십자가에서 그분의 영광이 계시되었다.

220116 요한복음(29)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

[설교요약]“너희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를 적대하던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주신 이 말씀은 그들이 지금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전제한다. 그들은 로마의 속국의 지도자들이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 여겼으며, 자신들의 죄의 지배 아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자유란 우리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일치되어 가는 과정에서 성숙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온전한 자유에 접근해가는 과정이고, 우리는 자유로워져 가는 존재이다.

220109 요한복음(28) 때를 이루어감 (요7)

[설교요약]“예수의 때”란 예수께서 붙잡히심으로 시작되어 수난, 죽음, 부활, 승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날 때를 가리킨다. 예수는 공생애 시작 전부터 이미 그 때를 내다보시고 준비해 가신다.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요한을 예의주시하던 유대인들의 눈이 예수에게로 옮겨가고 그를 향한 적대감이 증폭되어 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예수의 때가 무르익어간다. 이 때는 곧 예수께서 영광 받으실 때이다. 요한복음은 예수 생애의 두 순간에 영광이 결정적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성육신이고(1:14) 다른 하나는 십자가이다. 그 지점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만나 하나를 이룬다.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5월 31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창세기 17:9-27

제목:   창세기(43) 불가능한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