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1122 그리스도로 옷 입은 교회 (갈 3:26-28)

[설교요약]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이다. 옷은 사회적 신분의 상징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를 구별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들이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자녀의 신분은 부모에 의해 결정되며, 모두 동일하다. 사회적 신분이 교회 구성원의 자격을 결정할 수 없고, 교회 내 역할 특히 리더십의 자격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루터기교회는 변화를 계속해 가고 있다. 오늘 여성 장로를 세움으로써 한 걸음 더 진전한다. 이 때에 적절한 은혜를 내리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앞으로도 시의적절하게 그루터기교회를 변화시켜 가실 주님께 우리를 온전히 내어드린다.

201115 창세기(18) 가인이 두려워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창 4:13-24)

[설교요약]
가인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시점에 사람은 아담, 하와, 가인, 세 명뿐이지 않았나? 우리가 성경의 사람들과 다른 전제를 가지고 읽기 때문에 이 점이 문제시 되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성의 전제인데, 이 전제는 내재의 한계 속에 있다. 그러나 에덴 동산은 내재를 초월한 시공간이다. 창세기에는 창조가 종말의 전망과 연결되어 있다. 창조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이자 내일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 속의 인물과 사건들은 인류 역사를 대표하는 원형이다. 그 이야기는 죄의 지배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보여준다.

201108 창세기(17) 죄를 다스리라 (창 4:1-16)

실낙원 이후 우리는 두 가지 방법 곧 예배와 윤리적 삶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한다. 가인은 그 두 가지에 모두 실패했다. 이 이야기에 “죄”가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죄는 우리를 지배하려 한다. 죄를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가인은 죄의 지배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럴 수도 있다. 회개하고 다음에 잘하면 된다. 그러나 가인은 반복된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 결과 그는 그의 존재의 근원인 땅으로부터 추방되었고, 보복의 두려움 속에 살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복의 악순환을 끊으신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신 분이시다. 우리도 예배와 삶으로 그분께 신실함을 다하자.

200503 산상수훈(25) 복되다(마 5:3-12)

[설교요약] 시에는 생략의 미학이 담겨 있다. 열 마디로 할 것을 두 세 마디로 함축해 내는 것이 시이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는 생략된 정보를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 그 정보들은 올바른 맥락에 놓일 때 가장 적절히 채워질 수 있다. 한 편의 시인 팔복선언은 산상수훈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을 때 팔복선언에 등장하는 여덟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윤리의 이상적 모델인 완전한 사람(마 5:48)을 보여준다. 그들은 가난과 굶주림과 박해와 슬픔을 신앙의 계기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온유함과 긍휼과 깨끗한 마음과 평화의 실천은 하나님이 일하시기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그들이 바로 어린이와 같은 존재들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다(마 19:14).

200426 산상수훈(24) 행위의 반석(마 7:24-27)

[설교요약] 본문은 산상수훈 결론의 마지막 문단으로서 예수님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종말의 구원과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반석은 예수의 말씀이다. 그리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은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예수가 아닌 다른 것, 욕망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비유의 이슈는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따라 행하느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보이는 것은 모래 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래 위에 높고 아름다운 집을 빠른 속도로 세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현실에서 비록 더디더라도 예수의 말씀 위에 튼튼한 집을 세우자.

주일 예배 안내

2026년 5월 31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창세기 17:9-27

제목:   창세기(43) 불가능한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