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71112 “로마서(12) 영광의 소망” (롬 5:1-11)

[설교요약] 신학적 개념들에 대한 3인칭 서술이 주를 이루는 로마서 1-4장과 달리, 5장부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적인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4장까지의 내용이 하나님 백성의 신분에 관한 것으로,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이라면, 로마서 5-8장은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그 원리를 보여준다. 그 삶의 원리는 ‘평화,’ ‘소망,’ ‘영광,’ ‘환란,’ ‘인내,’ ‘성령,’ ‘사랑,’ ‘구원’과 같은 키워드둘에 담겨있다. 5장 2절은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향해 나아가는 삶으로 규정한다. 그 소망은 기계적으로 주어지는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라, 고난을 인내함으로 단련된 인격을 통해 지향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 맘속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사랑을 보증한다.

171105 “로마서(11) 우리의 믿음” (롬 4:23-25)

[설교요약]찰스 탈버트(Charles Talbert)는 바울이 말하는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믿음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2) 믿음은 업적이 아니다. (3) 믿음의 대상은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예수님의 인격이다. (4) 믿음은 행동을 대신하는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다. (5) 믿음이란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6) 믿음은 전인격을 포함한다. (7) 믿음이란 예수를 따르기로 하는 나의 결정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탈버트는 로마서를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읽지 않지만, 믿음에 관한 이 일곱 명제는 하나님 나라 복음과 잘 어울린다. 이 모든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 되심’이기 때문이다.

171029 “로마서(10)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롬 4:16-17)

[설교요약] 유대인들은, 혈통상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배타적 특권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유대인만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육신의 조상이기에 앞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그 언약은, 미래에 태어날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맺는 것이기도 하기에, 자손에 대한 약속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 약속의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살려내시고 없는 것들을 있는 것들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출산 능력에서) 이미 죽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살려내셔서, 무로부터 새로운 언약 백성을 창조해내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언약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 언약 안에 머물렀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171022 “로마서(9) 하나님의 은혜” (롬 4:1-8)

[설교요약]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공평하게 심판하시고 동일한 자격으로 구원하신다면, 주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로마서 4장은 이에 대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유대인의 특권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도 전에는 불경건한 이방인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를 선택하시고 의롭게 하신 것이다. 4장은 ‘여기다,’ ‘쳐 주다’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 ’로기조마이’를 11회나 사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될 자격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런 것으로 쳐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로 우리를 지으셔서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시며, 동일한 은혜로 부르시고 또 보내신다.

171008 로마서(8) 이신칭의 (롬 3:27-31)

[설교요약]새 시대가 되어, 예수의 신실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다. 이스라엘의 불신실함으로 언약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변함없는 신실하심으로 다시 인류에게 손을 내미신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은, 율법과 상관없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모든 믿는 사람을 향한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 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의롭게 된다. 이신칭의는 그 중 한편, 즉 사람 편에서 이루어진 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신칭의는 하나님의 의의 계시의 한 측면일 뿐이다.

171001 로마서(7) 예수의 신실하심 (롬 3:21-26)

[설교요약] 로마서는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이라는 맥락에서 전개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로마서 3:21-26은 율법을 매개로 한 옛 언약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매개로 새 언약이 맺어졌음을 선언한다. 본문은 예수의 신실하심, 즉 십자가 사건을 먼저 노예의 ‘속량’, 즉 죄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견지에서 설명하며(24절), 이어서 예수가 그 피로 인해 ‘속죄소’가 되셔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죄의 지배와 구별하는 결정적 특징이다. 십자가는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하는 능력이다.

170924 로마서(6) 율법의 행위 (롬 3:1-20)

[설교요약]3장 1-20절은 죄의 지배를 보여주는 로마서 반제 단락(1:18-3:20)의 마지막 부분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공평하게 내리신다는 2장의 경고에
대해 유대인들이 제기할 수 있는 질문에 답한 후(1-8), 전체 논의를 요약 정리하고 마무리한다(9-20). 유대인들은 말씀을 맡은 특권을 가졌지만 그 특권에는 책임이 따른다. 유대인들이 언약에 신실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악용하여 죄를 반복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심판이 예비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바울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죄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율법의 행위, 즉 언약백성의 이름표를 다는 것만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 율법은 단지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해 줄 뿐이다.

170917 “로마서 (5) 마음의 할례” (롬 2:25, 28-29)

[설교요약]오랫동안 바울은 율법주의자들과 싸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율법을 준수하여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에 대항하여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로워질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됨을 설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2:16-29에 나오는 유대인은 그와 다르다. 그들은 오히려 율법을 자랑하기만 할 뿐 지키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할례를 받아 유대인이라는 이름표는 달고 있지만, 실제로 유대인답게 살고 있지는 않았다. 언약백성의 외적 표지는 가지고 있으나 정작 언약을 지키지는 않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그들의 할례가 무효가 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들의 그러한 외면적 유대인 됨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전혀 고려사항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70910 “로마서(4) 행위에 따른 심판” (롬 2:6-11)

[설교요약]로마서 2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 말한다. 선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그리고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들은 우리가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갑없이 의롭게 된다는 3:21 이하의 내용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이 많이 있었다. 그 대부분의 공통점은 2장의 내용이 바울의 생각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교 신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행위심판 사상을 포기한 적이 없으며, 로마서 2장 외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을 역설한다. 따라서 2장과 3:21이하를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 되심의 복음이라는 큰 그릇을 필요로 한다. 바울은 행위구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 되심의 믿음에 열매로 따르는 선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170903 “로마서(3) 죄의 지배” (롬 1:18-23)

[설교요약]복음, 즉 예수의 주 되심 안에서는 ①하나님의 의가 ②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③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부터 ④우리의 신실함으로 ⑤계시된다. 그와 반면에 죄의 지배, 즉 파라오의 질서에 대해서는 ①하나님의 진노가 ②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모든 사람들에게 ③하늘로부터 ④그들의 불경건함과 불의함을 겨냥하여 ⑤계시된다. 인간이 죄의 지배 하에 들게 된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이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우상숭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주일 예배 안내

2024년 4월 28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골로새서 1:15-20

제목:   거룩한 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