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8-31장, 전도서 1-12장, 아가서1-8장, 열왕기상 12-15장 (2016년 8월 28일 – 9월 3일)

카테고리: 성경공부,알림

<828일 일요일: 잠언 28-31>

솔로몬의 잠언 2부(28:1-29:27), 이 둘째 잠언 모음은 주로 악인과 의인에게 초점을 맞춘 55개의 2행 연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단원의 앞과 중간과 마지막에 있는 2행 연시가 악인과 의인의 주제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에 주목하라. 그리고 그 구절들 사이에 기본적으로 통치차, 교훈,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의와 관련된 2행 연시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에도 유의하라.

아굴의 잠언(30:1-33), 이 다양한 모음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매우 흥미롭다. 특히 다음 요소들에 주목하라. 2-4절이 욥기 38:5-11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는 점, 7-9절의 기도(잠언의 유일한 기도), 11-14절에 제시된 네 부류의 악인들, 15-31절에 등장하는 숫자에 관련된 말씀/수수께끼들, 이 마지막 요소는 특정한 도덕적 교훈과는 반대되는 인생에 대한 다양한 관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르무엘의 잠언(31:1-9), 이 마지막 모음은 왕비인 어머니에게 훈계를 받은 왕의 말씀들을 서술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장의 두 부분은 지혜로운 여인들의 모범을 제시하며, 1-9장에 등장하는 의인화 된 ‘숙녀 지혜’의 교훈을 완결한다.

결어 “지혜롭고 이상적인 아내”(31:10-31), 잠언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현숙한 여인’에 대한 이상적인 묘사는 아마도 르무엘의 모친이 훈계한 또 다른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각 절 앞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순서대로 배열하는 아크로스틱 형식의 시(각 절이 히브리 알파벳으로 시작하며, 22개의 알파벳이 순서대로 등장함)다. 잠언 전체에서 가르친 가치들의 관점에서 이 여인을 이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주목하라. 이것은 잠어 모음의 적절한 결론이다.

 

<829일 월요일: 전도서 1-3>

수고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1:12-2:26), 전도자는 왕의 관점에서, 인간의 수고로 얻은 ‘이득/수익’에 관한 3절의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관심사인 지혜(1:12-18)에서 출발한다. 지혜가 유익하기는 하지만 번민도 더해준다. 이는 그가 이제 세상의 헛된 본질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 그는 쾌락의 추구(2:1-3)와 재물과 부의 축척(2:4-11)으로 주제를 바꾼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덧없는 것이기에 아무 유익이 없다. 그 이유는 동일한 운명, 즉 죽음이 모든 이들에게 닥치기 때문이다(2:12-16). 한 사람의 소유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든다(2:17-23).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전환할 준비, 즉 재물을 얻기 위해 인생을 사용하기 보다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누릴 준비를 해야 한다(224-26).

모든 것이 기한이 있다(3:1-22). 전도자는 이제 자기 독자들이 인정해야 하는 현실의 성격을 서정적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그 자체의 리듬과 시기가 있어서(1-8절) 사람이 자기 수고로 소득을 얻지 못한다(9절). 그러나 사람이 그 사실에 적응하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10-22절).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전도자의 주장(11-14절)과 그가 개인의 미래에 대한 확실성이 전혀 없는 세상(21절)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이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에 주목하라. 동시에 그는 초기의 주제들(인간의 약함,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드는 죽음)로 되돌아간다.

 

<830일 화요일: 전도서 4-7>

성공, 학대, 고독(4:1-16), 악이라는 주제(3:16-17)를 채택한 전도자는 부에 대한 욕망 때문에 타인들을 학대하는 일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런 일은 너무 비참하기에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편이 실제로 더 낫다(4:1-3).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수고와 성취(성공)가 이웃에 대한 시기심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4-6절). 그런 수고는 이웃에게 적대적이라서 결국 고독하게 된다(7-8절). 전도자는 왕의 예를 들어서(13-16절) 지혜로우면서 가난한 것이 어리석으면서 성공한 것보다 낫다고 결론을 내린다. 늙은 왕의 뒤를 잇는 젊은 ‘후계자’도 결국 선왕과 같은 운명을 겪기 마련인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감(5:1-7), 전도자는 부와 학대를 경계하는 설명을 갑작스럽게 중단하고 올바른 태도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촉구한다. 올바른 예배 자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말을 적게 하고 바르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지혜의 우월성(7:1-29), 12:9에서 전도자를 잠언의 수집자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드디어 그러한 잠언 모음이 등장한다, 그것은 “~보다 나으니라”는 식의 잠언들로서 앞의 관심사들을 반영한다. 전도자가 지혜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중도적인 태도를 취하는지 잘 살펴보라. 그는 지혜를 우상화하지도 않고 증오하지도 않으면서 최대한 지혜의 관점에서 살아간다. 인간의 덧없는 실존 속에서도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에는 죽음이라는 실체를 수용하는 것이 포함된다(2-4절). 모든 것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앞에서 강조한 만족이다(7-24절). 지혜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렵다(23-25절). 하지만 올가미를 놓는 여인들을 피해야 하는 것(26절 참조)과 인간들이 바르게 지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했다는 사실(27-29절)과 같은 지혜로운 교훈 몇 가지는 배울 수 있다.

 

<831일 수요일: 전도서 8-12>

불의한 세상에 대한 태도(8:1-17), 전도자가 1절의 질문(“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을 왕의 궁궐에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언급하면서 설명하는 것(2-6절)에 주목하라. 지혜로운 자는 왕과 맞서기보다는 물러나는 편을 택할 것이다. 이어서 전도자는 이러한 관찰 내용을 지혜로운 자에게 적용한다.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 할지라도 인생의 문제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7-8절). 9-15절에서 전도자는 악과 불의의 주제를 다시 다루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가 주신 인생을 즐기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불가해성을 언급하면서 마무리한다(16-17절).

죽음을 직면하여 사는 삶(9:1-12), 전도자가 앞에서 이미 언급한 여러 주제들을 여기서 다시 다루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 죽음은 모든 이들에게 임하는 확실한 것이다(1-6절). 비록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종종 불행한 것이라 하더라도(11-12절) 어떤 인생이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7-10절).

지혜의 길(9:13-10:20), 여기서 전도자는 어리석음에 비해 지혜의 길이 유익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숙고한다. 특별히 9:13-18에서 “~보다 나으니라”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에 주목하라. 반면 10장은 대부분 특별히 악한 주권자 밑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잠언 자료 모음을 사용하여 지혜의 유익함을 다시 확증한다.

젊은이들에게 주는 마지막 말(11:9-12:8), 전도자는 삶이 지속되는 동안 짧은 인생을 최대한 누릴 것을 반복해서 주장한 두이ㅔ 결론 부분에서 젊은이에게 초점을 맞춘다. 청년의 때는 잠시 잠깐이므로 자신에게 오는 기회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시간도 짧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늙어감에 따라 서서히, 그러나 확고하게, 삶 속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죽음을 생각하면서(12:1-7) 최선의 삶을 살라고 젊은이에게 촉구한다(11:9-10). 이것이 “너희 창조주를 기억하라”(12:1, 6)의 의미다. 또한 8절이 어떤 식으로 전도서 전체를 감싸고 있느지 주목하라(1:2) 인생은 덧없고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전도서는 영원에 비추어서 인생의 유한함을 지속적으로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확실하게 부활을 경험할 것이라는 위대한 계시를 예비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런점에서 전도서는 성경의 이야기와 조화를 이룬다.

 

 

<91일 목요일: 아가서 1-4>

이 책에서 전형적인 것은 여자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각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서두에서 여자는 나머지 부분 – 남자에 대한 갈망과 즐거움 –을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 여기서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요청한다. 만일 이 부분에서 ‘왕’이라는 단어가 문자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면 솔로몬을 가리킬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것은 하나의 은유일 것이다. 즉 사랑의 위대함을 고취시키려고 왕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첫 장면, 연인들의 만남(1:7-2:7). 이 첫 장면을 읽을 때 8절이 사랑하는 자의 질문에 대한 남자의 응답일 수 있음에 주목하라. 그것은 전체 장면이 두 연인의 상호 대화임을 의미한다. 여자는 먼저 목자들 가운데서 그를 찾는다(7-8절). 이어서 서술적 묘사(9-11, 12-14절)와 서로에 대한 기쁨(15-16절)의 내용이 번갈아 나온다. 그리고 사랑의 장면을 묘사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 뒤에 여자는 꽃의 이미지로 자신을 묘사하고(2:1-2) 남자를 사과나무에 비유한다. 여자는 그 나무 그늘 아래 쉬고 그 열매를 즐긴다(3-6절). 첫 장면에서 여자의 마지막 말은 예루살렘의 여자들에게 사랑을 방해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이다(7절).

둘째 장면, 희망, 초청, 꿈(2:8-3:5). 이 장면의 두드러진 특징은 연인들의 갈망이다. 남자는 산을 뛰어 넘어 와서 창으로 들여다보는 노루와 같다. 여자는 남자에게 초대의 말을 건넨다. 이제는 봄, 사랑을 나누기 좋은 계절이다(10-13절). 남자는 숨어 있는 곳에서 나오라고 여자를 부르고, 꽃이 만발한 포도원을 망치는 ‘여우들’(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자들)을 잡으라고 요청한다.

솔로몬의 부와 사치(3:6-11), 이 수수께끼 같은 단원은 여자의 연인과 대조시키려는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를 위풍당당하게 묘사하지 않고 자연의 요소를 빌어 소박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아니라면 이 단원은 솔로몬이 여자의 연인임을 밝히고, 다음 장면에 나오는 그들의 사랑의 행위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이 단원이 아가의 전체 시 중에서 유일하게 산문에 가까운 부분이라는 점에 주목하라. 여기서 나타나는 그림은 재물과 권력과 부에 대한 것이다.

<92일 금요일: 아가서 5-8, 열왕기상 12>

넷째 장면, 꿈과 연인을 찾음(5:2-6:3), 이 단원에서는 여자가 다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또 다른 꿈 장면으로 보이는 부분에서 그녀의 연인이 와서 그녀를 부르다가 가 버린다(5:2-6). 여자가 다시 남자를 찾아 나서지만 이번에는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그녀를 괴롭힌다(7절). 그녀는 예루살렘의 딸들과 짧은 대화(8-9절)를 나누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연인의 모습을 머리에서 다리까지 묘사한다(10-16절). 그리고 서두처럼 그와 나눈 입맞춤을 회상하면서 마무리 한다. 여자는 예루살렘이 딸들에게 두 번째 질문을 받고(6:1) 앞의 사람의 장면에서 사용한 말로 답하고(2절), 이어서 서로 하나가 된 것과 정절을 표현하는 말을 반복하여(3절) 다시 답한다.

다섯째 장면, 사랑의 기쁨(6:4-8:4). 이 장면에서 남자와 여자가 모두 길게 말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 이 장면은 남자가 주도적으로 여자의 머리와 얼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자에 대한 사랑이 강렬하므로 여자는 당시 모든 문화적 규범에 반(反)하여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현한다(8:1-2). 여자는 앞에서 사용한 말을 반복하여 남자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드러낸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여자들에게 당부하면서 마친다(4절).

결어, 죽음과 같이 강한 사랑(8:5-14). 아가는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아무도 막을 수 없음을 암시하는 일련의 짧은 묘사와 함께 서로를 부르는 마지막 초청으로 끝난다.

 

아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성적인 사랑이 선하다는 것과 그 사랑을 경건한 절정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이야기와 조화를 이룬다.

 

 

<93일 토요일: 열왕기상 13-15>

이번 열왕기상의 단락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강조점에 주목하라. 1) 하나님의 계획을 알리고 북왕국의 왕들에게 책임을 묻는 선지자들의 주도적인 역할, 2) 북왕국이 이방 연합국들과 함께 남왕국을 공격함, 3) 다윗 때문에 유다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4) 북왕국의 왕위 계승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반역과 권력 암투를 통해 이루어짐.

여로보암 1세의 이야기는 나머지 이야기들에 특별히 중요하다. 화자가 여로보암 이야기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진술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 그의 출발은 모세와 흡사하다(그는 하나님께 택함 받고 ‘무거운 멍에’를 메고 고통당하는 백성을 구하러 애굽에서 온다, 12:1-4 참조). 그러나 결국 그는 아론과 같이 행동한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아론의 말을 그대로 반복한다(출 32장). 이렇게 시내산의 반역을 반복하는 것은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모두 여로보암의 길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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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Lee Cha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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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2024년 4월 28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골로새서 1:15-20

제목:   거룩한 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