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20306 요한복음(35) 왕을 어떻게 맞이할까? (요한12:12-19)

[설교요약]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일, 그리고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은 요한복음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로마 제국을 위해 예수를 제거하려 했다. 반면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호하는 무리는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신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을 그침으로, 죽임이 아니라 죽음으로 그의 나라를 세우시며, 그 나라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용한다. 이 세상 나라와 다른 그 나라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를 맞이하는 모범을 마리아가 잘 보여준다.

220220 죽음을 대면하심 (요한11:32-38)

[설교요약]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은 그냥 많은 치유 사건 가운데 하나로 서술하지 않는다. 이것은 예수를 죽음으로 이끈 사건이며, 동시에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그래서 예수는 나사로의 죽음을 단순한 생물학적 죽음으로 대하시지 않고, 더 근본적인 죽음의 현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인간을 지배하는 사탄의 지배에 대면하신다. 그래서 이 죽음에 분노하신다. 그리고 마리아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신다. 우리는 모두 죽지만 주님 오시는 날 함께 부활할 것이다. 우리는 죽음에 삼키우지 않는다. 육체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통로에 불과하다.

220213 죽음과 영광 (요한11:1-8)

[설교요약]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이 예수의 죽음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제국의 관리가 되길 원하던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로마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고, “한 사람을 제거”하는 정치적 해결을 선택했다. 죽은 사람을 살려냄으로 이 땅에서 예수의 영광이 절정에 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를 십자가로 내 몰았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예수의 죽음을 영광의 사건으로 서술한다. 사람이 되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예수의 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히 빛나듯(1:14), 예수의 십자가에서 그분의 영광이 계시되었다.

220116 요한복음(29)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

[설교요약]“너희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를 적대하던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주신 이 말씀은 그들이 지금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전제한다. 그들은 로마의 속국의 지도자들이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 여겼으며, 자신들의 죄의 지배 아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자유란 우리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일치되어 가는 과정에서 성숙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온전한 자유에 접근해가는 과정이고, 우리는 자유로워져 가는 존재이다.

220109 요한복음(28) 때를 이루어감 (요7)

[설교요약]“예수의 때”란 예수께서 붙잡히심으로 시작되어 수난, 죽음, 부활, 승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날 때를 가리킨다. 예수는 공생애 시작 전부터 이미 그 때를 내다보시고 준비해 가신다.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요한을 예의주시하던 유대인들의 눈이 예수에게로 옮겨가고 그를 향한 적대감이 증폭되어 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예수의 때가 무르익어간다. 이 때는 곧 예수께서 영광 받으실 때이다. 요한복음은 예수 생애의 두 순간에 영광이 결정적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성육신이고(1:14) 다른 하나는 십자가이다. 그 지점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만나 하나를 이룬다.

211114 요한복음(21) 예수의 증인들 (요 5:31-47)

[설교요약]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했다는 죄목을 예수를 법정에 세웠다. 예수님은 먼저 자신은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냄 받으신 분임을 분명히 하며 그 사실을 입증한 네 증인을 세우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시는 일들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도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알고 있었다(2:23; 3:2). 네 증인의 실제 역할은 예수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 법정의 피고는 예수가 아니라 “유대인들”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무지로 인해 남을 정죄하는 입장에 설 때가 있지 않은가? 그들의 실수로부터 배우자.

211107 요한복음(20)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요 5:17-30)

[설교요약]예수께서 안식일에 38년 병자를 치유하신 일을 “유대인들”이 문제삼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고 대답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안식일에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계속하신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했다고 분개하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만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예수님은 그분의 뜻을 따라 창조의 생명을 보전하며, 생명을 교란하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에는 심판이 더해진다.

210606 요한복음(2) 말씀이 육신이 되다니(요 1:1-18)

[설교요약] 성경의 계시는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졌고 그 계시는 오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예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예수를 알게 되는 과정이 그러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깨닫는 과정이 그랬다. 여기서 신앙경험은 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형성하며 결정적인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요한복음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인으로서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 또 어떻게 그와 함께 예수가 사람이시라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 고백의 배경에 공동의 신앙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서 저자들의 역할은 그 경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계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신앙경험을 새롭게 하고 말씀의 성찰을 통해 이 시대에 주시는 계시를 받고 실천하기에 힘쓰자.

주일 예배 안내

2024년 4월 28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골로새서 1:15-20

제목:   거룩한 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