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1128 요한복음(23) 생명의 빵 (요 6:22-59)

[설교요약]오병이어 기적에 이어지는 설교에서 예수님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양식 곧 생명의 빵은 예수님이시다. 그 빵은 어떻게 먹을까? 예수께로 가는 것, 예수를 믿는 것이 생명의 빵을 먹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의 살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신다. 왜 이런 비유를 사용하셨을까? 첫째, 빵은 생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예수는 생명의 빵으로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둘째, 음식은 우리 속에 들어가 우리의 존재가 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먹어 예수가 우리의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

211121 요한복음(22) 나다 (요 6:1-27)

[설교요약]예수님은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심으로 여기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셨다. 그리고 잠깐의 만족을 넘어 미래에 다가오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눈을 들게 하셨다. 기적만 보고 표징은 보지 못한 무리는 예수를 왕으로 만들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예수께서 우리 주님으로 오실 때 그를 맞아들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호렙산의 “에고 에이미”를 재현하심으로 그것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다. 하나님을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가두려 하지 말고,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주님의 일하심을 보자.

211107 요한복음(20)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요 5:17-30)

[설교요약]예수께서 안식일에 38년 병자를 치유하신 일을 “유대인들”이 문제삼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고 대답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안식일에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계속하신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했다고 분개하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만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예수님은 그분의 뜻을 따라 창조의 생명을 보전하며, 생명을 교란하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에는 심판이 더해진다.

211010 요한복음(17) 사마리아인들의 믿음 (요 4:3-42)

[설교요약] 예수는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셔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가성의 여인은 세례 요한과 제자들에 이은 최초의 증인이 되었다. 여인의 증언은 그리 확신에 찬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마치 그분을 기다려 온 사람들처럼 여인의 말에 반응했고, 예수를 자기들에 집에 초대했다. 그들은 세례 요한과 제자들에 최초로 예수를 진정으로 믿은 사람들이다. 보고도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대조된다. 예수는 사마리아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정통 종교에 속함이 구원을 보장하지 못함도 알려주셨다. 중요한 것은 종교 소속이 아니라 믿음이다.

211003 요한복음(16) 성령의 샘 (요 4:3-42)

[설교요약]예수님이 주시는 “살아있는 물”은 성령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이 물은 (1) 우리 안에서 계속하여 콸콸 솟아나며 (2)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데(4:14), 이것은 요한복음 7:37-39와 6:63에서 각각 성령의 활동을 서술하는 비유로 사용된다. 또 예수님은 자신이 주시는 물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신다(4:10). 이는 사도행전의 여러 구절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이다(행 2:38; 8:20; 10:45; 11:17).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3:5) 그리고 예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1:33)도 같은 비유의 세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을 느끼고 있는가? 우리의 샘을 잘 관리하고, 그 샘의 능력으로 살아가자.

210926 요한복음(15) ‘찐’ 감사 예배 (요 4:20-24)

[설교요약]“영과 진리로”(in spirit and truth)를 의미하는 헬라어구에서 영과 진리는 하나의 실제를 가리킨다. “영으로 곧 진리로” 또는 “진리의 영으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으로 예배하는 것은 성령의 임재 가운데 성령에 이끌려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성령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로 번역된 “알레쎄이아”는 “거짓”의 반대말이지만, 요한복음에서 “진정함” 또는 “신실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진정 성령에 이끌려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응답하여 감사로 예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의 본질은 감사이다.

210919 요한복음(14) 은혜의 기회 (요 4:3-30)

[설교요약]예수께서 수가 성의 여인과 나누신 대화는 여러 점에서 니고데모와 나누신 대화와 대조된다. 니고데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밤에 예수를 찾아왔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정오 경에 물 길러 나온 여인을 찾아가셨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의원으로서 그 사회의 최상층부에 있었다. 반면에 그 여인은 사마리아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그녀의 비도덕적인 삶으로 인해 그 사회의 최하층부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것을 은혜의 기회로 삼으셨다. 니고데모와의 대화는 개념적이나 그 여인과의 대화는 시각적이고 경험적이다. 예수는 치밀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그 여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변화시키셨다.

주일 예배 안내

2021년 12월 5일 오전 11시(온라인예배)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요한복음 6:60 – 7:9

제목: 요한복음(24) 예수를 오해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