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0718 요한복음(8) 예수를 보라 (요1:29-51)

[설교요약]본문에서 세 단락으로 증언의 사이클이 이어진다. 요한이 예수를 증언하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고, 다시 제자들이 그 역할을 이어받아 예수를 증언한다. 본문에는 본다는 말이 매우 자주 나온다. 시각적 인지를 가리키는 일곱 가지 동사가 23절에 무려 24회 사용되었다. 요한은 오직 예수를 가리키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행복했던 이유는 그가 예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예수는 십자가를 통해 영광을 보여주신 분이시다. 봄은 경험을 통한 앎을 상징한다. 요한과 제자들이 예수를 보았을 뿐 아니라 예수도 그들을 보셨다. 우리가 예수를 보는 것은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와 눈을 맞추는 것이다. 요한복음을 읽는 가운데 그 친밀한 사귐이 더 깊어지길!

210711 요한복음(7) 나는 소리요 (요 1:6-8, 15, 19-34)

[설교요약]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예언자 곧 모세와 같은 예언자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 셋은 종말에 올 구원자의 표상이다. 사람들이 요한을 그렇게 짐작한 이유는 그의 대중적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럼 누구일까? 요한은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음성이라고 말한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음성 기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요한이 하나의 기표로서 에수를 가리키는 행위가 곧 “증언”이다. 요한은 빛을 증언하는 자이다. 그것은 달이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대개 사람들이 알아줄 때 존재감을 느낀다. 그러나 요한은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그의 존재와 사명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보름달과 같이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다.

210704 요한복음(6)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 21:24-25)

[설교요약]사실의 개념은 시대에 따르게 변화되어 왔다. 주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로토스 이전까지 사람들은 사실과 신화를 구별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의 사실에는 신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신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 시대 로마의 전기작가들은 주인공의 인물 됨을 잘 드러내기 위해 사실을 각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전기인 복음서의 저자들은 그 책에 예수에 관한 사실을 담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을 오늘날의 실증주의적 사실 개념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된다. 복음서가 예수를 구원자로 서술하는 과정에서 예수 시대와 복음서 시대의 지평 융합이 일어났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여 서술한다.

210627 요한복음(5)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요 1:14-18)

[설교요약] 요한복음 1장 14절의 배경에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장면들이 있다. “사셨다”로 번역된 스케노오는 하나님의 임재(쉐키나)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현현은 구름 속에 비치는 영광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스로를 “은혜와 진리가 풍성하신 분”으로 계시하셨다. 구약의 하나님의 구름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처럼, 신약의 하나님은 예수의 육신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사람이신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높으신 하나님이 낮은 곳에서 계시되며, 초월자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통해 보여진다. 그 예수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복음서를 주의깊게 읽으라.

210620 요한복음(4)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요 1:9-13)

[설교요약]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자기 땅에 오셨다. 그러나 그의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 회당에서 출교 당한 역사가 있다. 초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의 테두리 내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주후 70년 이후 바리새파를 중심으로 유대교가 통일되어 가면서, 그 차이가 부각되어 출교 당하는 시련을 겪게 된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고, 자기 종교에 대한 확신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확신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오늘도 새로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눈이 열려있어야 한다.

210606 요한복음(2) 말씀이 육신이 되다니(요 1:1-18)

[설교요약] 성경의 계시는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졌고 그 계시는 오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예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예수를 알게 되는 과정이 그러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깨닫는 과정이 그랬다. 여기서 신앙경험은 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형성하며 결정적인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요한복음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인으로서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 또 어떻게 그와 함께 예수가 사람이시라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 고백의 배경에 공동의 신앙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서 저자들의 역할은 그 경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계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신앙경험을 새롭게 하고 말씀의 성찰을 통해 이 시대에 주시는 계시를 받고 실천하기에 힘쓰자.

210530 요한복음(1) 신앙경험과 고백 (요 1:1-5)

[설교요약] 우리가 이어받은 예수 신앙은 하루 아침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신앙경험과 성찰과 체계화와 신앙고백으로 이어지는 오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신약성경 속에서도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는데, 요한복음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발전된 일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가장 심오한 내용을 가장 쉬운 언어로 서술한 책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대충 읽고서 다 이해했다고 오해하기 쉬운 책이기도 하다. 두 가지에 유의하며 요한복음을 읽어나가자. 하나는 사람이신 예수를 알기에 힘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표면적인 내용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바탕이 된 신앙경험에 접근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170611 중심 이동 (요 20: 21-23)

[설교요약] 중심 이동이란 나를 그 사람의 자리에 놓고, 그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그의 감각으로 느끼며, 그의 눈으로 세상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필요가 나의 우선순위가 되고, 그의 행복이 나의 기쁨이 되며,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에 나도 함께 사는 것이다. 창조자 하나님은 이 세상의 중심이지만, 홀로 중심이 되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가 각자 중심이 되도록, 그래서 아무도 변두리가 되지 않도록 지으셨다. 그 수많은 중심들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이 샬롬이다. 십자가 사건은 샬롬을 회복하는 중심이동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를 보내시며 맡기시는 샬롬의 미션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그 중심이동이다.

주일 예배 안내

2024년 4월 28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골로새서 1:15-20

제목:   거룩한 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