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1010 요한복음(17) 사마리아인들의 믿음 (요 4:3-42)

[설교요약] 예수는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셔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가성의 여인은 세례 요한과 제자들에 이은 최초의 증인이 되었다. 여인의 증언은 그리 확신에 찬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마치 그분을 기다려 온 사람들처럼 여인의 말에 반응했고, 예수를 자기들에 집에 초대했다. 그들은 세례 요한과 제자들에 최초로 예수를 진정으로 믿은 사람들이다. 보고도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대조된다. 예수는 사마리아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정통 종교에 속함이 구원을 보장하지 못함도 알려주셨다. 중요한 것은 종교 소속이 아니라 믿음이다.

211003 요한복음(16) 성령의 샘 (요 4:3-42)

[설교요약]예수님이 주시는 “살아있는 물”은 성령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이 물은 (1) 우리 안에서 계속하여 콸콸 솟아나며 (2)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데(4:14), 이것은 요한복음 7:37-39와 6:63에서 각각 성령의 활동을 서술하는 비유로 사용된다. 또 예수님은 자신이 주시는 물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신다(4:10). 이는 사도행전의 여러 구절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이다(행 2:38; 8:20; 10:45; 11:17).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3:5) 그리고 예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1:33)도 같은 비유의 세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을 느끼고 있는가? 우리의 샘을 잘 관리하고, 그 샘의 능력으로 살아가자.

210926 요한복음(15) ‘찐’ 감사 예배 (요 4:20-24)

[설교요약]“영과 진리로”(in spirit and truth)를 의미하는 헬라어구에서 영과 진리는 하나의 실제를 가리킨다. “영으로 곧 진리로” 또는 “진리의 영으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으로 예배하는 것은 성령의 임재 가운데 성령에 이끌려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성령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로 번역된 “알레쎄이아”는 “거짓”의 반대말이지만, 요한복음에서 “진정함” 또는 “신실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진정 성령에 이끌려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응답하여 감사로 예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의 본질은 감사이다.

210919 요한복음(14) 은혜의 기회 (요 4:3-30)

[설교요약]예수께서 수가 성의 여인과 나누신 대화는 여러 점에서 니고데모와 나누신 대화와 대조된다. 니고데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밤에 예수를 찾아왔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정오 경에 물 길러 나온 여인을 찾아가셨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의원으로서 그 사회의 최상층부에 있었다. 반면에 그 여인은 사마리아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그녀의 비도덕적인 삶으로 인해 그 사회의 최하층부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것을 은혜의 기회로 삼으셨다. 니고데모와의 대화는 개념적이나 그 여인과의 대화는 시각적이고 경험적이다. 예수는 치밀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그 여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변화시키셨다.

210912 요한복음(13)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요 3:22-30)

[설교요약]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음성기호가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볼 때 그는 보이지 않고 오직 그가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 그런 존재말이다. 그 사명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 이것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존재가 작아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인이 낳은 자 가운데 가장 큰 자였다(눅 7:28). 그는 그 사명을 잘 감당해냈고, 가장 작아짐으로 가장 큰 자가 되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 존재감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줄 때 생긴다. 그러나 진정한 자존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 자신을 성찰함으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210905 요한복음(12) 요한복음 3장 16절 (요 3:14-21) 안용성 목사

[설교요약]요한복음 3장 16절은 14-17절로 이어지는 더 큰 문장의 일부이다. 주문장은 인자가 들림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14-17절은 예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설명한다. 인과관계로 보자면, 십자가에 선행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원하고자 하시기 때문이고, 그로 인한 결과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어둠을 떠나 빛으로, 예수께로 나아오는 것이다. 18-21절은 우리의 믿음이 행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내어주신 그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210801 요한복음(10) 돌아오신 하나님의 임재

[설교요약]예수는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신 후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이 말씀은 예수의 몸이 곧 성전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21절). 성전의 원형은 광야시대의 성막이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그의 백성을 만나시는 장소였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을 두고 계속된 유다의 타락으로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고 만다. 뒤에 세워진 제2성전과 헤롯성전에도 하나님의 임재는 없었다. 그 영광의 임재는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쉐키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라고 반복하여 촉구한다.

210725 요한복음(9) 하나님 나라 잔치 (요 2:1-11)

[설교요약]본문은 요한복음에 담긴 많은 표징들 가운데 첫 사건을 보도한다. 유대인들에 관습에 비추어 볼 때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예수께서 거기에 개입하셔서 신랑의 명예를 지켜주시고 자기 영광을 드러내셨다. 포도주는 없고 차가운 돌항아리만 놓여 있는 그 공간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잊어버리고 차가운 선긋기에 여념이 없던 그 시대 유대교와 오늘의 한국교회를 떠올리게 한다. 손님이셨던 예수님은 그 잔치의 주인이 되셔서 친히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신다.

주일 예배 안내

2024년 4월 28일 오전 11시

설교자: 안용성 목사

본문:   골로새서 1:15-20

제목:   거룩한 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