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1127 선교적 교회

[설교요약] 사도행전은 미완성으로 끝나며, 독자인 우리에게 그 완성을 일임한다. 우리는, 제자들을 따라,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자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로서, 사도행전의 남은 이야기를 함께 써 나간다. 선교가 전도로 축소될 때, 선교는 교회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그러나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며, 오히려 교회가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위해 존재하는 선교적 교회는, 한편으로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의 선교사로서의 각 교우를 통해,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어간다. 선교적 교회는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오는 구조’(모이는 교회)와 ‘가는 구조’(흩어지는 교회)의 균형을 추구한다.

161120 권세를 주신 이유

[설교요약] 사도행전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시작과 끝도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한 영역으로서 정치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이 설교는 2016년 미국 대선에 관해 입장을 표명한 존 맥아더 목사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정치는 하나님의 주 되심이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영역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로마서 13장이 말하는, 하나님께서 정부를 세우신 두 가지 목적은 동시에 정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1)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2)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벌하기 위해 정부를 세우셨다.

161106 매여있음

[설교요약]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되었다. 로마로 가는 뱃길은 참 험난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라 풍랑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풍을 만나 난파한 배 위에서 사도 바울의 진가가 드러난다. 그는 비록 매인 몸이었지만, 겉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살려낸다. 그리고 15일간의 표류 후에 다다른 몰타 섬에서 모든 사람들은 바울 덕에 귀빈 대접을 받게 된다. 바울은 성령에 매이고 사슬에 매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령에 매인 사람이기에, 사슬이 그를 제어할 수 없었고, 거친 바람과 어둠의 위세가 그를 지배할 수 없었다. 성령은 자유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161030 아직 더 가야 한다

[설교요약]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은 유대인 군중의 살해 위협에 직면한다. 마침 로마군 수비대가 개입하여, 바울은 그 위기를 벗어나지만, 그 후로 2년간의 긴 수감생활이 이어진다. 이 무의미해 보이는 고난의 기간에 바울은 좌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무죄를 변론한다. 그리고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왜 그럴까? 그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명을 위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바울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아직 더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161023 나의 달려갈 길

[설교요약] 사명이란 교회 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소명이다. 그러나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삶에 하나님의 주 되심이 이루어져 갈 때, 그 일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이 된다. 반면에 교회 일이나 목사의 일도 세속적 욕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하나의 종교사업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사명을 수행할 것인가?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되느냐에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증인이 되는 것이다(행 1:8). 되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더 자주 하나님을 만나자.

161016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설교요약] 밀레도의 고별 설교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릴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사명이 생명보다 중요한 것인가? 사명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대변한다면, 생명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존재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분명한 자존감이 없는 가운데 사명을 강조하면, 그 사명은 율법이 될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일치를 이룰 때, 생명과 사명이 일치될 때 비로소 바울과 같은 고백에 이를 수 있다.

161009 바울의 제자도

[설교요약] 사도행전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는 신적 필연성을 강조하며, 거기에서 투옥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고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왜 가야 하는지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바울은 그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묵묵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에게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언자 야가보를 통해 그 고난을 알게된 성도들은, 처음에는 바울을 만류하지만, 이내 바울의 그 길에 참여자와 지지자가 된다.

161002 에베소

[설교요약] 보통 ‘제3차 전도여행’이라 불리는 기간에 바울은 그의 활동무대를 안디옥에서 에베소로 옮겨 거기에 머물며 그동안 세운 교회들을 관리하고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도왔다. 성서학자들 사이에 견해의 차이는 있으나, 초기 바울서신 7권 중 5권이 이 기간에 기록되었고, 그 외에도 바울과 교회들 사이에 인적교류와 편지교환이 계속되었다. 교회들은 바울에게 헌금을 보내 후원하고 참여할 정도로 성장하였고,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에 직면하여 바울의 신학도 더 체계화되었다. 우리의 신앙도 계속하여 성장해야 한다. 말씀의 섭취와 기도 그리고 실천이 계속될 때 온전하고 균형있는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

160925 당신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설교요약] 데살로니가를 급히 떠난 후 베뢰아를 거쳐 아테네로 가면서도 바울의 마음은 여전히 데살로니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에서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보내 환란 가운데 있는 교회를 격려하게 한다(살전 2:17-3:2). 디모데는 고린도로 돌아와 (행 18:1, 5)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그들이 여전히 바울 일행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그로 인한 바울의 감사와 기쁨이 데살로니가전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이미 죽어버렸으리라 포기했던 가녀린 새싹이 살아 남아 튼튼히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기쁨, 그저 네가 그곳에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인해 느끼는 벅찬 감사이다. 당신으로 인해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160918 그것이 그런가 하여

[설교요약]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반대하며 소동을 일으키곤한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유대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그렇고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그렇다. 바울은 성경을 해석하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며 유대인들과 토론했다(행 17:2-3). 이에 대해 어떤 유대인들은 귀를 막고 소동을 일으키며 거부했으나, 베뢰아의 유대인들은 그것이 정말 그런지 검증하기 위해 성경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매일 그 말씀을 묵상하여 그 말씀으로 자신들의 신앙과 삶을 검증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구원사의 변곡점에서 하나님과 함께 갈 수 있었다.

주일예배 안내

8월 2일 오전 11시(온라인예배)

설교자: 강윤주 목사 (모새골공동체교회)

본문:  마태복음 14장 13-21절, 이사야서 55장 1-3절

제목: “밥상 속에 담긴 하나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