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60501 받아들이는 자가

[설교요약]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기에 들어간다. 왜 그럴까? 말씀 안에 답이 있다.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너무 쉽지 않은가? 그렇지는 않은 것같다. 예수님은, 본문에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움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23-25절).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기가 ‘어린이’에게는 쉬우나 ‘부자’에게는 어렵다. 신앙은 성숙은 우리 인격에서 하나님의 주 되심이 성숙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어린이와 같이 되어가는 것이다.

160424 사람을 살리는 종교

[설교요약] 스데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은 리버디노 회당의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로마군에 포로로 잡혀가 노예가 되었다가 해방된 사람들(freedmen)로서, 애굽의 노예살이와 바벨론 포로생활을 겪었던 그들의 조상의 고난을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더 자기 나라와 자신들의 종교를 사랑했지만, 그로 인해 생각이 경직되어 근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기독교는 사람을 살리는 종교이다. 그러나 생각이 경직될 때 기독교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종교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역사는 가르쳐 준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생각이 유연해야 한다.

160417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설교요약] 그루터기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기초하여 세워졌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나라의 패러다임으로, 그리스도인 된 우리 자신과 교회를 더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교회로 더 성숙해 가고자 한다. 그것은 영성과 사회적 실천의 양면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각 교우들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함께 교회로서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어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160410 십자가의 필연과 인간의 책임

[설교요약] 사도행전은 반복하여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의 뜻과 미리 아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임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를 죽인 사람들은 그저 구원의 드라마에서 누군가는 맡아야 할 약역을 담당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사도행전은 예수를 죽인 사람들의 책임을 강조하며, 반복하여 회개를 촉구한다. 십자가의 필연과 인간의 책임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작용하는 다른 주체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적대하는 파라오의 질서와 둘 사이에서 선택해가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다. 파라오의 질서를 선택한 자들이 예수를 죽인 것이다. 찬송가의 한 대목을 떠올려 본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160327 다시 사신 주님을 믿습니다

[설교요약]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부활 신앙이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예수의 주 되심인데, 예수로 하여금 온 세상의 주님이 되시게 한 결정적 사건이 바로 부활이기 때문이다. 부활은 단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몸이 죽지 않는 몸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파라오의 질서의 근원적 무기인 죽음의 독침을 해제하셨다. 우리를 지배하는 죽음의 능력은 이제 해체의 수순에 들어갔고, 주님 다시 오실 때, 죽음의 지배는 완전히 종식되어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선언하는 것이다.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160320 세상 속의 교회

[설교요약] 사도행전 1-7장은 유대인들의 이야기이다. 같은 유대인들 가운데에도 입장과 배경을 달리하는 다양한 그룹이 있었는데, 교회는 그 그룹들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 나갔다. 외적으로, 교회는 파라오의 질서를 대변하는 적대적인 지도자들과 싸우며, 다른 한 편으로, 중립적 위치에 있는 ‘백성’의 마음을 얻기에 힘썼다. 내적으로, 교회는 문화적 언어적 배경이 다른 히브리파와 헬라파의 차이를 인정하고, 생존이 위태로운 과부들을 보살폈으며,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교회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감수성과 함께 사회적 약자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어린이주일 온가족연합예배 안내

2024년 5월 5일 오전 11시

설교자: 김한별 전도사(아동부)

본문: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제목: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릇